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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7. 2023

익숙한 뒤태에서 낯선 이의 헌신이 느껴진다


어딘가 익숙한 뒤태다. 콕 찌르면 푸쉬쉬쉬 바람이 빠져 버릴 것 같기도 하고, 몰강몰강한 감촉이 느껴질 것만 저 뒤태. 그런데 한없이 낯설다. 낯선 이의 헌신이 느껴진다. 익숙한 뒤태에서 낯선 이의 헌신이 느껴졌다.


   저 익숙한 뒤태는 늘 좁디좁은 우리 집 부엌에서도 종종 보던 것이다. 우리 집 설거지 당번은 늘 그분이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그분이 서 계신 장소가 다소 낯설다. 옷차림은 더더욱 낯설고, 서 있는 곳은 물음표 백만 개를 머릿속에 띄울 만큼 낯설다. 그렇다. 오늘 그분은 낮은숲교회 주방에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끼고, 서 계신다. 앞모습 사진을 찍을 겨를은 없어 뒷모습으로 사진은 대체한다. (주: 사진은 다소 연출이다. 메인 주방이 다소 복잡해, 그분께서 잠깐 밖에 나왔을 때, 애벌 설거지를 하는 곳에서 촬영했다. 그분이 일을 하지도 않고 사진을 찍은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기를)

   그러니까 그분의 낯선 헌신이 가능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우리 교회는 점심을 고정적으로 준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설거지만 소그룹별로 돌아가고 있다. 원래 내가 속한 그룹은 다음 주에 봉사가 예정돼 있었다. 9월 첫 주에 어느 분이 그러셨다. 물론 그분은 순도 100% 농담이셨다. 사모님 이름은 설거지 봉사에 있는데, 왜 담임 목사님 이름은 없냐고 말이다. 당연히 그분은 그 시각에 설교를 마치고 나와서 나무지기 훈련을 준비해야 하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정말 그분과 마찬가지로 순도 100% 농담으로 그 말을 그분께 전했는데, 그분은 100% 진담으로 받아들이셨나 보다. 청년부 헌신 예배 주일로 우리 소그룹의 설거지 봉사를 바꾸더니, 떡하니 본인 이름을 넣어버리셨다. 이 모든 걸, 지난주, 주일예배 광고 시간을 통해 유튜브 영상에 박제해 버린 것은 덤이셨다.


   그랬다. 오늘은 우리가 모두 다소 낯선 헌신으로 각자 섬기게 됐던 것이다. 청년들은 예배 안내부터 모든 예배 순서를 맡았다. 찬양예배 때, 세션 및 싱어, 찬양 인도까지 청년들이 모두 헌신해 주었다. 그리고 말씀은 청년부 담당 목사님께서 맡아주셨다. 이 모든 헌신이 모여, 그분은 그 시각 주방에서 낯선 헌신을 감당할 수 있으셨던 것이다.


   언제나 사모란 이름 뒤에 숨어있던 나 또한 마찬가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모가 되어서 교회 주방 근처에 ‘봉사’란 이름으로 가 본 적이 없던 나도, 오늘은 주방 한 귀퉁이에서 작은 손길을 보탰다. 사진 속 그분이 서 계신 자리가 사실은 오늘의 내 자리였다.


   그렇게 늘 숨어 있어 몰랐던 귀한 섬김의 손길들이, 헌신의 시간이 비로소 낯선 뒷모습을 통해 보였다. 뜨끈한 그릇을 일일이 닦아서 정리해 두던 손길들, 수저를 가지런히 넣어두던 손길들,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통까지 깨끗이 닦아두는 것에 주저함이 없던 그 손길들.


   낮은숲 교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성도들을 향해 미소 짓는 그 사랑들, 주보를 나눠주는 그 손길, 쉬어도 모자란 주말 내내 찬양으로 헌신하기 위해 연습을 하며 시간을 헌신하는 그 귀중한 섬김들. 성도님들의 그 섬김과 헌신이 이제야 비로소 쿵- 하고 와닿았다.


   무엇보다 작고 소중하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낮은숲의 청년들이,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손길을 보태온 그 젊은이들의 수고가 또 가슴을 쿵- 하고 울렸다. 어쩌면 낯설게만 느껴지던 오늘이 각 자리는, 그동안 늘 보이지 않게 묵묵히 흘렸던 그 땀방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땀방울이 빈틈없이 곳곳을 채우고 있었기에 여태껏 낮은숲의 주일이 그렇게 안온하게 흘러갔을 테지. 감사하게도 말이다.


   앞으로도 낮은숲은 늘 언제나 여전히 많은 분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섬김과 눈물과 기도와 사랑으로 푸르러 가겠지. 그 헌신의 풍경에 더 이상 ‘낯선 이’가 되지 않기 위해, 익숙한 풍경의 한 조각이 되기 위해 고민하며 나아가야겠다. 비록 그 길이 다소 거칠고 험난할지라도 말이다. 낯선 이가 아닌 익숙한 풍경이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세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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