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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6. 2023

랜달 자매의 사랑은 곰머리를 타고


What's your ETA? What's your ETA?


이젠 언제 들려도 새삼스럽지 않은 소리다. 그러니깐 그 언젠가 지하철 안에서 학생들이 춤판을 벌였을 때, 부끄러웠던 중 이유 중 하나는 그 노래를 모두 알아서였다. 심지어 동작까지도 예상이 되니 더 부끄러웠다.


   우리 집에는 랜덤 플레이 댄스의 달인들이 산다. 그녀들은 언젠가부터 랜플에 빠져서 틈이 날 때마다 그것에 심취하곤 한다. 밤늦게 태권도 시범단 수업에 다녀와서 피곤할 법한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동을 건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때론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쨌든 랜플에 진심인 그녀들이 지난 2분기부터 방과 후 K-pop 댄스 수업을 듣는다. 지난 분기에는 둘 다 같은 시간에 아이브의 I AM을 배웠는데, 이번엔 시간이 달라져서 그런지 다른 곡을 배운단다. 첫째 나물이는 정국의 Seven, 둘째 까꿍이는 뉴진스의 ETA.  


   이번 분기에는 각각 두 곡을 배운단다. 그리고 댄스부 수업에서는 한 곡이 끝나면 영상을 찍는데, 어제는 그 영상을 찍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까꿍이는 다소 흥분상태였다. 생각해 보니 며칠 전부터 계속 떨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냥 흘려들었던 것 같다.


   평소보다 여유롭게 일어난 아침이라 그런가, 대쪽 같은 가르마로 쫑긋 양 갈래 머리를 묶은 나물이가 꼬챙이 빗을 들고 까꿍이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 알고 보니 오후에 있을 촬영을 위해 까꿍이가 스타일링을 요청했던 것. 나보다 손이 백배는 야무진 나물이가 까꿍이의 스타일링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까꿍이의 요청으로 완성된 오늘의 곰머리. 옷도 꽤 신경을 써서 입은 눈치인데, 머리에까지 공을 들일 줄 몰랐다. 게다가 나물이까지 저렇게 동생 머리에 진심일 줄이야. 얇은 꼬챙이 빗으로 섬세하게 머리를 잡아서 총총 땋고는 돌돌 말아 고무줄로 쫑긋 묶어준다. 그리고는 앞머리까지 가지런히 빗어내려 주면 곰머리 완성.  


   매일 옥신각신 싸우기 일쑤고, 서로를 일러대기 일쑤인 현실 자매들이지만, 이럴 때만은 어찌나 우애가 깊은지 모른다. 물론, 대체로 랜플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랜플이 가능하려면 안무를 따야 하는데, 안무를 따는 건 나물이의 몫이다. 영상을 0.7배속으로 하면 동작을 확인할 수 있다나? 어쨌든 그렇게 나물이가 동작을 따서는 까꿍이에게 일러준다. 그렇게 하나하나 함께 배우고 익힌 동작들을 ‘최신 아이돌 랜덤 플레이 댄스 영상’을 틀어두고 마음껏 즐기면 그녀들은 랜달 그 잡채가 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세상 깊은 우애로 서로의 스타일링을 봐주고, 영상 촬영을 격려해 주던 자매들은 결국 그날 오후, 촬영을 못했다고 한다. 까꿍이는 하긴 했는데, 키가 너무 작은 나머지 앞 친구에게 가려서 다음 주에 재촬영을 한단다. 나물이네는 댄스가 너무 어려워서 다른 친구들이 다음으로 촬영을 미뤘단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서 그런가? 현실 자매건, 현실 남매건, 그들의 다툼마저 부러워하며 자라서 그런가? 엄마로서는 속 터지는 랜달의 그녀들이, 랜플을 하며 흘려보내는 우애와 곰머리를 매만지며 솟구치는 그런 애틋함이 때론 그저 부럽기만 하다.


   우리 집에는 랜달 자매가 산다. 그리고 랜달 자매의 사랑과 우애가 곰머리를 타고 흐른 날이 있었더랬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두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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