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8. 2023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묻는다.

드라마 ‘자백’ 대본집 리뷰


-일사부재리: 어떤 사건에 대해 판결이 확정되면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없다는 형사상 원칙


드라마 대본집을 볼 때, 늘 첫 부분을 집중해서 보곤 한다. 앞부분에는 주로 기획 의도와 등장인물에 관한 소개가 나온다. 이런 부분들은 사실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다만, 대본집의 경우, 이 부분이 훨씬 더 자세하게 기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더욱더 꼼꼼히 읽는 편이다.


   자백이란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특히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가 매우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인 최도현의 경우, 홈페이지에는 9 문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소개가, 책으로 3쪽을 넘어선다. 이런 섬세한 설정은 원래는 제작자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시놉시스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후, 이를 연기하는 배우나 연출하는 감독, 소품을 준비하는 미술팀, 옷을 준비하는 스타일리스트 등, 여러 사람에게 참고가 되기도 한다.

좌: 홈페이지 인물 설명 / 우: 대본집 인물 설명

   당연히 독자인 우리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는 성장배경이나 일화들이 실려 있어, 우리가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인물의 대사를 이해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대사 톤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 자백의 대본은 그런 면에서 등장인물 설명에서부터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어 대본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배경지식이 된다.


   이 드라마는 제일 앞에 쓴 문장인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주인공인 최도현 변호사가 대본 처음 부분에서 맡았던 사건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5년 뒤, 법정에서 본인이 과거 사건의 진범이라 자백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과 얽히고설켜, 결국 10년 전, 아버지가 사형수로 판결받은 그 사건의 진실에 가 닿게 된다. 그 사건은 아버지가 자백을 통해 사형 판결을 받은 사건이기에, 아버지 최필수가 스스로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자백이 ‘재심 청구’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렇게 ‘일사부재리’란 주제 아래 엮인 여러 사건은 결국, 이 나라를 쥐고 흔들던, 자기들이 사는 세계는 일반 사람들과 마시는 공기 따위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바로 그 비선 실세의 비리에 다다르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 드라마를 2017년 3월 27일에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마도 작가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주하며, 그들이 결국 법의 심판대 앞에 서기를 바라며 이 드라마를 썼을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때마침, 형을 마치고 풀려나게 된 조두순의 출소가 ‘일사부재리’ 원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고 말이다.


   대본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이 사회에서 지니는 의미에 대해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원칙으로 인해, 무죄 판결을 받았던 사건에 대해 본인이 5년 뒤에 자백한다 해도 법이 그 사람을 처벌할 수 없는 현실, 반대로 흐트러진 증거 속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를 살인사건의 범인이라 자백하여 형을 살고 있는 경우, 재심을 받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뒤집어엎을 강력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사실들. 그 부딪힘에서 오는 법에 대한 각자의 고민이 대본 속에 잘 그려져 있었다.

  

   이 대본의 독특한 점은 여타의 다른 법정 드라마들과 달리, 모든 사건이 결국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지문이 거의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서술하는 데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감정은 그들이 뱉는 대사와 행동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도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만, 앞뒤 대사와 지문을 통해 독자인 우리는 그의 감정을 추측할 수 있고, 어떤 느낌의 배우가 어떻게 연기할지 머릿속에 그려볼 뿐이다.


   때론 대본집을 읽다 보면, 실제 드라마에서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궁금한 부분이 있다. 대본집 1권 96쪽에 보면 최도현이 기춘호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5년 만에 다시 살인 혐의로 최도현의 의뢰인이 된 한종구의 이야기로 심란한 그때, 이런 지문이 나온다.

‘고민하는 도현의 모습 너머로 동네 곳곳에 십자가가 퍼져있다.’ 그리고 바로 아버지 최필수가 있는 교도소 방 안으로 장면이 이어지고, 최필수가 성경책을 읽다가 도현과 찍은 사진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방송에서 편집되었을지도 모를 그런 작은 장면이, 드라마로 봤으면, 분명 우리가 지나쳤을 그 장면이 대본으로 보이니 머릿속에 콕 박혔다.


   어쩌면 애초부터 이 대본은 1회 기춘호 형사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선? 너!!! 피해자 가족들 앞에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은 생각해 봤나?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냐고! (법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런 게 정의라는 거야?”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네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매거진의 이전글 활자가 그려주는 드라마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