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9. 2023

최대의 난제, 극강의 밸런스 게임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밸런스 게임이 유행이란다. 정말 되지도 않는 이상한 선택지를 주며, 꼭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그 게임이 사실, 나 어릴 적에도 있었던 것이라면?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만큼 지상 최대의 난제이자, 극강의 밸런스 게임이 말이다.  

“밥으로 하실래요? 빵으로 하실래요? 수프는 크림수프, 야채수프 중에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그래, 그 질문을 받는 순간만큼은 지구상의 어느 문제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어렸을 적에 밥과 빵 사이에서는 늘 빵을 선택했던 것 같긴 하다. 최근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모닝빵을 직접 굽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버터 향이 물씬 풍기는 따끈한 모닝빵에 같이 나온 버터와 딸기잼을 바르고선, 샐러드와 함박스테이크를 곁들여 먹는 것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게다가 빵은 무려 2개를 주셨으니 말이다. 또 가끔 밥과 빵은 밥을 주문해도 테이블에 빵 하나를 더 달라고 하면, 흔쾌히 주시기도 했으니깐.


   오히려 어려운 쪽은 크림수프와 야채수프 쪽이었다. 직접 루를 만들어 끓인 고소한 크림수프와 토마토, 감자, 당근 등을 넣고 매콤 새콤하게 맛을 낸 야채수프는 언제나 고민, 또 고민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수프 추가도 없었을뿐더러, 있었다 하더라도, 수프를 돈 내고 두 개나 먹을 수는 없었으니 참으로 그 시간 속 나는, 지상 최대 난제를 마주한 그런 수학자의 심경을 손톱만큼 느꼈다고나 할까.


출처: 네이버 방문자 리뷰

   경양식 레스토랑 ‘함지’는 춘천시 중앙로 중앙시장 골목 어귀에 있다. 온갖 잡다한 가게가 있던 상가 2층, 전혀 레스토랑이 있을 법한 풍경이 아닌 곳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 춘천 시내 서너 개의 경양식 레스토랑이 각자의 분위기로 경쟁을 펼칠 때도 함지는 분위기보단 맛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긴 했다.


   계단을 올라가 들어선 실내도 묘한 분위기다. 장식품들의 분위기가 아프리카 토속품 느낌이다. 사장님께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사다 둔 장식품이라는데, 제각각이면서도 또 묘하게 어울린다. 그런 묘한 실내에 정장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분들이 홀을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나비넥타이도 하셨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흰 와이셔츠만 입으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아저씨였던 분들이었는데, 약간의 흰머리만 내려앉은, 여전한 그 아저씨들이 나를 맞아주셔서 반갑기도 하고, 정겹기도 했던 그런 곳. 사실 함지는 자주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생일,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졸업식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가는 그런 곳이었다. 다양한 메뉴가 많지만, 언제나 우리 가족의 선택은 함박스테이크였던 곳. 지글거리는 철판 위에 반숙 계란프라이가 살포시 올려진 함박스테이크. 직접 만든 소스로 맛을 내어 풍미가 끝내줬던 그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직도 영업 중인 그곳에 최근 10년 동안은 가 보지 못했다. 제일 마지막으로 간 것은 아마도 돌 무렵의 나물이를 데리고 갔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함지에서 제일 강렬했던 기억은 지금의 시아버님을 처음 뵙는 날이었고.

   춘천에 자주 가지 못할뿐더러 가서 평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찾아 먹는다고 해도 ‘함지’는 아무래도 거의 제외 대상이다 보니, 못 가 본 지,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인천에도 비슷한 느낌의 레스토랑이 있다길래 찾아가 봤지만, 나에게 인생 최대 난제를 안겨줬던 크림수프 또는 야채수프의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의 최애인 함박스테이크도 메뉴에 아예 없는 곳도 많았고.


   가끔 비슷한 맛을 찾아 헤매지만, 어차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겠지? 내가 다시 ‘함지’ 레스토랑을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나물이와 까꿍이, 그리고 우리의 교제 100일 기념 식사를 함지에서 준비했던 남편과 함께 다시 한번 꼭 가 보고 싶다.


밥으로 하실래요? 빵으로 하실래요? 수프는 크림수프, 야채수프 중에 무엇을 준비해 드릴까요?


 

추신: 앞으로 매주 화요일에는 ‘추억을 먹는 달팽이‘가 연재됩니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다섯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추억을_먹는_달팽이_시즌2

매거진의 이전글 무생채를 씹으며 추모(追慕)를 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