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연휴 밥상에서 나의 원픽은 어머님표 무생채였다. 딱히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 시댁은 명절에 가족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어머님이 해 주시는 편이다. 무생채는 어머님이 제철 무가 맛있다며, 평소 아버님과 아주버님이 드실 수 있게 해 놓으신 밑반찬이었는데, 두 끼 만에 나 혼자 반 통을 먹어 치웠다.
요 며칠 입맛이 별로 없어 식사량이 확 줄었는데, 무생채를 먹자마자 달아났던 입맛이 두 배로 돌아왔다. 무생채로 밥 한 그릇 뚝딱, 어머님표 고등어조림, 돼지갈비, 브로콜리 무침 등등으로 밥 한 그릇, 그렇게 매 끼니 밥을 두 그릇씩 먹어댔다. 하지만, 수많은 반찬 가운데서도 무생채가 단연 으뜸이었다.
선연한 빨간색의 무생채를 한 젓가락 집어 입안에 넣었다. 깔끔하면서도 상큼한 양념 맛이 입안에 감돈다. 어금니로 무생채를 씹고 있자니, 아삭아삭을 넘어 오독오독하기까지 한 식감과 겨울 무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감칠맛과 단맛에 그만, 밥이 계속 들어간다.
무생채를 먹으면서, 뜬금없지만 성심 씨와 사진 씨 생각이 났다. 성심 씨의 무생채는 분명 어머님 표 무생채와는 전혀 맛이 달랐다. 어머님은 깔끔하게 소금에 절여 맛을 내셨고, 우리 성심 씨는 멸치 액젓과 미원 가루 살짝으로 맛을 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무생채를 보니 성심 씨 생각이 났다.
성심 씨는 꼭 이맘때쯤 소고기뭇국을 끓여주곤 했다. 손이 큰 그녀답게 몇 날 며칠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소고기뭇국에는 꼭 무생채가 함께 밥상에 올라오곤 했다. 소고기뭇국에 살짝 담근 밥 한 숟가락에 무생채를 얹어서 입 안 가득 넣으면 뜨뜻한 기운과 더불어 무생채의 그 식감이 밥을 술술 들어가게 했다. 나나 우리 아빠 사진 씨는 국의 건더기보다 국물을 좋아했는데, 둘 다 밥과 뭇국, 그리고 무생채를 얹어 겨울을 나곤 했다.
사실 그때는 왜 꼭 소고기뭇국을 먹을 때만 무생채가 밥상에 올라오는지 잘 몰랐다. 주부가 된 요즘에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인데, 손이 큰 성심 씨이지만, 커다란 무 반 토막은 뭇국에 반 토막은 무생채를 만들었단 걸 깨달았다. 물론 나는 나름 현명한 주부 코스프레를 한다며, 뭇국을 끓일 땐 잘린 무 한 토막만 사곤 하지만 말이다.
명절 밥상에 올라온 무생채를 씹으며 그렇게 성심 씨와 사진 씨를 떠올리자니, 차례가 뭐 별건가 싶었다. 무생채 한입에 성심 씨의 오독오독한 목소리를, 또 한입에 사진 씨의 뭉근한 단맛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떠올리면, 그게 추모예배(追慕禮拜, memorial service.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교회용어사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살아서 무생채를 씹으며 맛을 느끼지만, 이제 볼 수 없는 그들은 이 맛을 영영 모르겠지. 그들은 천국에서 무엇을 하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만, 그들과 함께 둘러앉았던 주홍빛이 도는 꽃 모양의 나무 밥상과 성심 씨가 시집올 때 해 왔다는 한국도자기 밥그릇과 국그릇, 각자 한 벌씩 정해져 있는 은수저가 쪼르륵 놓인 그 밥상을 떠올리는 것. 그때 주고받던 이야기, 중간중간에 코를 자극하던 뭇국의 구수한 향, 무생채의 감칠맛과 참기름을 잔뜩 넣어 고소하기까지 했던 그 맛까지 떠올리다 보면, 나는 어느새 성심 씨와 사진 씨를 모두 만나, 밥상을 나누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게 이번 연휴 시댁에서 먹은 두 끼를 무생채와 함께 성심 씨와 사진 씨를 기억하며 나만의 추모예배를 드렸다. 자세한 속내를 모르시지만 엄청나게 맛있게 무생채를 먹는 며느리를 보며, 어머님이 커다란 무 하나를 더 사셨다. 그리곤 한 통 가득 새로 만든 무생채를 집으로 돌아오는 손에 쥐여 주셨다.
오늘도 간단히 라면 하나를 끓여 맞게 된 밥상에 무생채 한 접시만 올렸다. 무생채를 집어 라면과 후룩후룩 먹으며, 또 그들을 떠올린다. 저 한 통이 다 비워질 때까지 나만의 추모는 계속될지도 모르겠다. 오독오독한 성심 씨의 목소리와 달근한 사진 씨의 목소리를 그리는 일. 그러면서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엄마, 글쎄, 작은외삼촌네 둘째가 결혼한다네. 이모네 막내는 취업했다더라. 난 벌써 마흔이 코앞이네. 아빠, 우리 나물이 발차기 좀 봐, 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