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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26. 2023

배부른 주일 오후의 나른한 맛

진아 하우스

43년 노포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서 그런 것일까? 어디서 쥐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해할 것이 없어 보였던 그 집은, 알록달록하면서도 깨끗한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여 성황리에 영업 중이었다. 남편과 내가 평일 밤 8시 30분쯤에 방문을 했음에도 매장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포장만을 하는 우리조차도 2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계속 주문 전화도 밀려오고 있었고 말이다.


   추억의 햄버거로 유명한 그 집은 바로 춘천의 ‘진아 하우스’다. 그 옛날 미군 부대가 근처에 있던 시절부터 햄버거와 감자튀김, 양파튀김, 안주 버거, 해물라면과 김치볶음밥 등 정체불명의 국적을 알 수 없는 메뉴들로 가득 차 있던 집이다. 메뉴판은 한국어와 영어로 되어 있었는데, 영어 메뉴는 한국어를 들리는 대로 받아 적은 것이 전부인 뭐 그런 집이었다고나 할까.  


   그 집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교회 청년부실에서 몇몇 청년들이 모여 임용고시 공부를 하던 그 시절, 우리는 늘 점심, 저녁을 주변에서 해결해야 했다. 대부분은 당시 청년부 목사님 댁에서 신세를 지곤 했지만, 매번 그럴 순 없으니 근처 식당을 배회하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햄버거 맛집이란 이야기를 들었고, 솔직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지만, 오로지 맛있다는 한마디에 불쑥 발을 들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몇 번 더 가긴 했지만, 매장에서 먹기보단 주로 포장을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사실 성심 씨도 이곳을 전혀 알지 못했다. 언젠가 오후 예배마저 끝난 주일날, 성심 씨에게 교회 근처에서 햄버거를 사서 집에 가자고 했다. 처음에 외관을 보고 성심 씨도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햄버거 2개를 포장해 왔다. 어린 나물이와 나, 성심 씨, 이렇게 셋이서 햄버거 두 개를 나눠 먹었다. 이미 점심을 먹은 상태에서 간식으로 먹은 것이라 엄청나게 배가 불렀다. 배는 불러오고, 낮잠을 놓친 나물이도, 주일 아침부터 분주했던 성심 씨와 나도, 몸이 나른해지더니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그랬다. 내 기억 속에, 진아하우스 햄버거 하면, 언제나 그날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노릇노릇 구운 햄버거 빵 사이에, 직접 만든 얇은 패티, 그 패티를 계란물로 한 번 감싼 후 구워서 빵 사이에 넣은 햄버거. 채 썬 양배추와 양파, 솔솔 뿌려진 후춧가루와 찍 뿌려진 케첩과 마요네즈가 전부인 그 시장통 베이커리 느낌의 햄버거. 주일 오후의 낮잠처럼 나른한 맛이 났던 햄버거.


   이번 휴가 때, 그 나른한 맛이 그리워 남편과 함께 들렀다. 여전히 은박 포일에 감싼 그 햄버거는 여전한 모습과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어쩐지 성심 씨와 함께했던 그 나른한 맛은 느껴지지를 않는다. 밤이라서 그랬을까.


   아니, 아마, 다시는 느끼지 못할 맛일 게다. 주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함께 움직이던 성심 씨가, 수동 기어의 투박한 갤로퍼를 몰고, 나물이와 나를 태워 교회를 오가던 성심 씨가, 그 풍경이, 그 존재가 사라졌으니, 그 맛도 사라져 버린 게다.


   다음엔 나물이와 까꿍이도 데리고 한 번 가게에 직접 가봐야겠다. 나물이 너는 아기 띠에 안겨서 왔었는데, 까꿍이 너도 아마 한 번쯤 엄마 품에 안겨서 왔었던 곳인데 기억이 나느냐고 물으며. 온 가족이 한 번 가봐야지. 우리 가족이 마주할 햄버거는 어떤 맛일까? 내일의 휴가 일정을 정리하는 분주한 맛이려나.


   어쩐지 햄버거 냄새가 코끝에 어른거리는 오후다. 나른한 맛과 함께 여전히 그 기억 속에는 성심 씨가 자리하고 있고, 괜스레 눈물이 난다. 햄버거 맛과 별개로-.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스물두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추억을_먹는_달팽이_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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