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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3. 2023

아이스크림 컵을 보고 눈물이 나는 우리

함지 레스토랑 방문 후기

들어가는 입구부터 여전하다. 다만, 내가 여태 알고 있던 문이 후문이란 사실이 좀 놀라울 따름이다. 10년 만에 레스토랑 입구를 들어섰는데, 꼭 타임머신을 타고 온 기분이다. 여전한 내부, 조금 늙으셨지만, 정정한 모습으로 카운터를 지키시는 사장님, 세월이 묻은 쟁반을 들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빙을 하시는 분들. 게다가 깔아주신 종이조차 너무 그 시절 그대로다.


   그랬다. 불량 며느리는 추석이 다 지나고서야 시댁에 내려온 주제에, 약 25시간 만에 혼자만의 외출을 감행했다. 지지난주에 추억을 먹는 달팽이에서 언급했던 ‘함지 레스토랑’에 오고야 만 것이다. (#열다섯번째 글 참고) 이젠 친구가 되어버린 교회 제자들과 만나기 위해서라는 핑계 아닌 핑계 뒤에 숨은 마음은 함지였다.


   아버님 댁에서부터 함지 레스토랑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오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 신이 났다. 변해버린 곳은 어디가 바뀌었는지 다른 그림을 찾는 기분으로, 여전한 그곳은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며 미리 도착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천막사와 신발 가게가 어우러진 입구, 어렸을 적 그대로인 레스토랑 내부를 눈으로 한 번, 마음으로 두 번 담아내고, 사진으로 남겼다.


   한때는 제자였던 B, C, D가 도착했다. 소싯적 선생님의 마음으로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장소를 정했나 싶었는데, 다들 지나가면서 꼭 와 보고 싶었단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춘천 레트로 레스토랑으로 유명하다나? 다행이다. 모두 제각각 추억이 깃든 메뉴를 주문한다. 아뿔싸, 수프는 선택사항인데, 빵이랑 밥은 모두 내어 주신다. 시간이 지나니 최대의 난제 하나가 풀려버렸다.

   서로 함지에서의 추억을 나누는 사이, 수프가 나왔다. 어쩐지 난 수프를 보면서부터 눈물이 날 것 같다. 어쩜 이렇게 그대로인지.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라고 이야기하자 서빙해 주시는 분이 그런다.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한 입 먹어보니 그 맛이 분명한데, 기억 속의 맛과 조금은 다르다. 좀 더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맛. 향신료의 향이 은은히 감돌면서 감칠맛이 느껴진다. B가 크림수프를 남겼다. 남은 수프에 후추를 뿌려서 입 안 가득 넣어본다. 기억 속 수프보다 훨씬 더 묵직하면서 깊고 부드럽고 고소하다.

   파인애플처럼 보이는 단무지도 얇게 편 흰 밥도 그대로다. 빵은 좀 커진 것 같은데, 역시나 직접 만드시는지 부풀었을 때, 서로 달라붙었다가 떨어진 자국이 보인다. 그릇에 담긴 버터와 잼이 너무나 그대로여서 우리는 또 한 번 감탄한다. 샐러드는 드레싱과 야채 구성이 바뀐 듯하다. 레트로 속의 트렌디함이 돋보인다.


   메인메뉴가 나왔다. 함지의 대표메뉴인 계란후라이 이불이 덮인 함박스테이크와 소스가 뿌려진 채로 나오는 경양식 돈가스. 여전한 그 맛과 더 후해진 인심, 그 안에서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들에 마음도 몸도 가득 차는 기분이다. 사장님은 그 기나긴 코로나를 어떻게 이겨내셨을까. 여긴 어쩜 그대로일까.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뭐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식사가 끝났다. 우린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가야 하기에 후식은 모두 아이스크림으로 통일했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아이스크림 위에 무엇이 장식되었던가였다. 초콜릿 시럽이었는지, 스프링클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해진다. 깔끔하게 치워주신 상 위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세상에. D가 그런다. “아이스크림 그릇이 너무 그대로예요.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내일 또 가족들과 오고 싶어요.” 은색의 아이스크림 컵 위에 동그마니 뽀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얹어져 있다. 한입 먹어보니 풍미가 진하고 깊다.


   아이스크림까지 깨끗이 비우고 나오면서 사장님께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까 미처 찍지 못한 카운터 옆쪽을 연신 찍어댄다. 그런데 저 사진 속 얼굴이 낯이 익다. 자세히 보니 손흥민 선수다. 손흥민 선수와 사장님과 찍은 사진, 손흥민 선수와 아버지, 사장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사장님께서 그러신다. “흥민이가 어렸을 때, 형편이 어려웠잖아. 그래서 여기 오면 내가 빵도 더 주고 그랬어.”


   세계에서 유명한 그도 함지에서의 추억이 있겠지. 43년 동안 그 자리에서 여전한 모습 그대로인 그곳에서 많은 이들은 저마다의 기억을 간직했을 것이다. 그 추억과 기억의 맛들이 쌓이고 쌓여 또 새로운 맛들을 엮어가겠지. 오늘의 우리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 우리의 관계가,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들이 변하듯, 그대로인 그곳에서의 우리는 다르다. 다르지만 같은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기를. 추억을 먹는 우리가 배부를 수 있도록 부디 그대로 있어 주기를-.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스물아홉번째

#Cre쎈조

#추억을_먹는_달팽이_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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