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23. 2023

택시를 사랑하는 이의 변명


택시를 사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택시 타는 것을 즐긴다. 즐기다 보니 사랑하게 됐다.


   택시를 자주 타게 된 건, 대학교 때부터였다. 최저 임금이 시급 2,200원 시대에, 기본요금 1,800원짜리 택시를 타는 여대생이라니. 성심 씨와 사진 씨에게 돈 쓰는 게 헤픈 년이라며 욕도 엄청나게 먹었다.


   그렇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택시를 끊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나의 변명은 이랬다. 대학 입학 이후, 아니 수능 시험 바로 다음 날부터, 용돈이라곤 전혀 받지 않았으니, 그저 김밥 천국에서, 편의점에서 한 시간 일한 대가를 택시 타는 데 쓰겠노라고.


   당시에 택시를 탔던 건,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우리 집에서 대학까지는 걸어서 50분 정도가 걸렸다. 주로 수업을 듣는 인문대까지는 1시간 정도. 캠퍼스가 꽤 넓어 캠퍼스 내에서 수업을 듣고, 취재하러 다니며 2~3시간을 기본으로 걷는 날도 있는 내게,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갈 자신은 없었다.


   그러면 성심 씨는 버스를 타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 집 앞에서는 학교로 가는 버스가 없었다. 버스를 타려면 15분을 걸어 시내로 나가야 했고, 거기서 한참 동안 기다려 버스를 타면, 후문에서 내려 인문대가 있는 정문을 가든, 법원에서 내려 정문으로 걸어오든, 모두 또 10분은 넘게 걸어야 했다. 버스 타러 가는 데에만 25분, 버스 타고 이동하는 시간 25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 그 모든 시간을, 택시를 탐으로 인해, 책 한 자를 더 보고, 잠을 한숨 더 자고, 공부하는 데 쓰곤 했다.


   과외로 주로 생활비를 벌었기에 시간이 돈이라는 사실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택시를 타는 것 또한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이라 여겼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더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짐도 많고, 걸어가기엔 교회 거리가 애매해서, 처음 인천에 왔을 때, 교회에 갈 때마다 택시를 탔다. 우리 집도 교회도 골목 안쪽이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먹은 적도 많다.


   비록 무서울지언정, 그럼에도 나의 택시 사랑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오전 근무지와 오후 근무지의 거리가 버스로는 애매할 때마다 택시를 탔다. 남편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그런다. 차라리 운전을 하라고. 기름값, 자동차 보험료, 무엇보다 나의 운전 실력으로 걸리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아직은 택시를 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택시비가 어마어마하게 오른 요즘은 가끔만 택시를 탄다. 여전히 택시를 사랑하지만, 시간을 돈 주고 사야 할 만큼의 바쁨이 다소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근무지도 한 곳이고, 아이들도 제법 커서 퇴근이 늦더라도 둘이 엄마를 기다려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택시비가 오른 것도 한몫한다. 시간적인 면에서도 출퇴근하는 구간의 통행량이 급증한 요즘, 택시를 타고 가도 드라마틱한 시간 절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요금은 10배 정도 비싸다 보니, 아주 바쁘지 않은 이상, 택시 사랑을 자제하는 편이다.


   언제까지 택시를 사랑할지는 모르겠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니깐. 다만, 나처럼 이렇게 누군가는 비싼 줄 알면서도, 그런데도 택시를 사랑하고 애용하는 이들을 위해 변명을 늘어놓아 보았다. 택시-, 그 편리하면서도 비싸디비싼 이름이여-.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열아홉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매거진의 이전글 신상 과자 리뷰 1 - 농심 먹태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