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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28. 2023

추석이 뭐 별 건가-.


큰집에 가곤 했다. 약 20년 동안 명절마다 우리 가족은 춘천 큰집에 갔다. 제사를 지내진 않지만, 음식을 만드는 건 비슷했다. 동그랑땡, 녹두전, 꼬치 전, 송편 등. 어렸을 적엔 큰집에 가는 게 참 좋았다. 어느 순간, 그들이 성심 씨와 사진 씨를 경시하는 걸 알고부터는 가기 싫어졌다. 그깟 추석 음식 따위 먹지 않아도 좋았다.


   결혼을 했다. 추석 음식을 만드는 게 딱히 부담이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가야 할 곳과 있는 곳의 괴리감이 날 지치게 했다. 그 괴리감에 나또가 공감해 주지 않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을 만드는 건 그저 고된 노동이 되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즐겁지 않았다.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니, 귀성길, 귀경길이 남의 일이 아닌 게 됐다. 여태까지 명절에도 사는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그 모든 것이 나의 일이 되어갔다. 물론, 때에 맞춰 갈 수 있지는 않았다. 나또가 새벽기도 담당이거나, 교회에 일이 생기거나, 명절 당일이 주일이면 우린 늘 언제나 그저 집에서 지내곤 했다.


   올해도 그렇다. 연휴가 길다지만, 주일까지 나또 님은 꼼짝 마 상태다. 그나마 주일 오후쯤에나 시댁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그전까진 복작복작 뭐라도 해 먹어야 한다. 명절 분위기를 음식으로 내려고 꽤 노력하곤 했는데, 올핸 그냥저냥 넘어가려 한다. 그냥 온가 족이 먹고 싶은 거 딱 한 가지 정도에만 힘을 준다고나 할까.


   LA갈비는 어쩌다 보니 미리 해서 벌써 다 먹어버렸다. 전이 없으면 서운할 것 같아, 집 앞 GS 슈퍼에서 전을 만들어 팔기에 종류별로 몇 개씩 담아왔다. 지난주에 띵굴마켓에서 맛집 밀키트도 주문하여 아까는 얼큰 버섯 칼국수를 먹었다. 내일은 낙지볶음과 소시지베이컨 볶음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비장의 요리도 도전 준비 중이다.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에서 제법 해볼 만한 요리가 있기에 내일 도전해 보려고 한다. 크게 손이 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해 봐야 알겠지만.


   남들과 다소 다른 풍경의 명절을 지내다 보니, 어떨 때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물이와 까꿍이가 생각하는 명절이 남들과 다를 것 같아서다. 벌써부터 명절에 방 탈출을 해야 한다는 둥, 영화를 보자는 둥 하는 걸 보면, 그저 기우만은 아닐 것 같긴 하다.


   다르면 뭐 어떠랴. 온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오순도순 즐겁게 지내면 되는 거지. 별다를 게 있겠나. 꼭 명절에 먹어야 하는 음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깐. 다만, 한 해도 풍성하게 채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보내주신 정성 어린 손길을 귀히 여길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시간으로 채우면 되는 거니깐.



   이제 곧 추석이다. 올 한 해도 따스한 손길로 온 가족이 강건할 수 있게 붙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려야지. 오랜만에 여기저기 안부도 전해야지. 온 가족이 모이면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껄껄거리시던 사진 씨의 웃음도 기억해야지. 요리하는 손길을 도우며 분주히 여기저기 장을 보러 다니던 성심 씨의 운전대도 떠올려야지. 나또, 뚜시, 나물, 까꿍. 우리 가족이 앞으로도 함께 할 수많은 명절을 그려봐야지. 그럼 됐다. 추석이 뭐 별 건가-.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스물네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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