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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5. 2023

도시락 사는 달팽이

도시락 이야기 2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건 중1 때부터였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사실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급식을 하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아주 신기하게도 새벽이 바쁜 성심 씨를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학교는 강원도에서 지정한 급식 시범학교라 급식실이 애초부터 갖춰진 학교였다. 나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급식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학교 내 급식실에서 영양소에 맞게, 맛있으면서도 따뜻한 밥을 매일 제공해 주었다. 저학년생들의 경우, 엄마들이 당번을 정해서 급식을 나눠주는 도우미로 오기도 했다. 어쨌든 내 머릿속 급식은 늘 맛있고, 따뜻한 음식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했다. 집에서 다소 거리가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됐다.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다. 우리가 입학하던 해에 급식이 시작되었고, 아침에 30분이나 걸어서 가기에 당연히 급식을 신청했다.     


   급식을 먹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직 급식실을 짓기 전이라, 외부 업체가 음식을 만들어 와서 배급하는 방식이었는데, 세상에 음식이 차갑기 이를 데 없었다. 차가운 데다가 맛도 없었다. 도저히 먹고 싶지 않았다. 급식비를 내는데도 늘 매점에 가서 다른 것들도 배를 채워야 할 판이었다.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급식을 취소했다. 아침잠을 포기하고서라도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3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는 반찬은 전날 미리 반찬통에 담아 두었다. 당시에는 햇반이 없으니 성심 씨가 잔뜩 해 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밥통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따뜻한 반찬 한 가지는 아침에 만들어서 챙기곤 했다. 도시락 싸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난로가 설치되는 겨울이었다. 양철 도시락에 김치밥을 만들어서 챙겨 가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랬다. 미안하게도 도시락이란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엄마의 정성이 아니었다. 달콤한 아침잠을 포기한 대가였다. 그렇게 3년을 도시락을 챙겨 다녔다. 고등학교는 급식이 맛있었고, 급식실과 식당이 학교 내에 모두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점심은 급식을,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먹으며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지금도 일하는 학교에서 제공되는 급식을 먹지 않는다. 중학교 급식은 한창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맞춰진 식단이라 열량이 생각보다 높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살이 찌는 기분이다. 또 여러 가지 업무가 많은 편이라, 가볍게 교무실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챙겨가곤 한다.


   최근에는 요요의 키친이란 곳에서 샐러드 도시락을 주문하곤 한다. 우리 집은 새벽 배송이 가능한 지역이어서 더욱더 편리하게 이용한다. 도시락은 매주 월요일, 수요일 새벽마다 집 앞으로 2개씩 배달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4일은 샐러드 도시락을 먹고, 나머지 하루는 냉동 도시락이나 빵, 샌드위치 등을 먹는다. 물론, 지내다 보니 한국어 학급은 체험학습이 많아, 외부에서 점심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어, 얼추 4개의 도시락이 스케줄에 들어맞는 편이다.

요요의 키친에서 새벽마다 배송되는 샐러드 도시락


   물론 아주 가끔은 마음먹고 내가 직접 간편한 샐러드 도시락을 만들기도 한다. 아니면 선물 받은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 간다. 마녀 수프, 단호박 구이, 으깬 감자구이 등. 마녀 수프는 조만간 한 번 더 도전할까 싶은데, 토마토 값이 너무 올라, 고민 중이다.


언젠가 만들었던 단호박구이, 으깬 감자구이


   지난주부터 다음 주까지는 계속 공휴일이 있는 데다가 외부 활동이 있어서 샐러드 도시락 주문을 멈춰놓았다. 오늘은 간단하게 먹었는데, 내일은 시어머님께서 챙겨주신 밑반찬으로 도시락을 싸려 한다. 어머님께서 직접 만드신 오징어젓갈, 어머님의 아바타가 된 내가 열심히 만든 멸치볶음과 진미채. 이 정도면 또 그렇게 한 끼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나의 점심


   러시아어권 아이들에게 도시락이 Доширак, 즉 도시락 라면이듯, 어렸을 적 나에게 있어 도시락은 아침잠을 포기한 대가였다. 요즘 나에게 도시락은 효율이요, 시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도시락을 아니, 시간을 돈 주고 산다. 물론 가끔 도시락을 시간으로 사기도 하지만-.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서른한번째

#Cre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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