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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6. 2023

성금 씨의 성심


2주 전에 주소를 입력한 물건이 드디어 왔다. 이걸 먹으면 꼭 보낸 이에게 반할 것 같다. 이름하여 ‘농협 안심한우 – 반하누’다. 한우 1등급 선물 세트로 등심, 업진살, 부챗살이 들어있다. 문자로 이미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퇴근길에 파채와 각종 쌈 채소를 사 왔다.


   오늘은 까꿍이의 생일인데, 어제 미리 나또 씨와 나물이, 까꿍이는 롯데월드를 다녀왔다. 지난 9월 말에 나물이 생일과 오늘 까꿍이 생일, 그리고 다음 주에 있는 나또 씨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롯데월드에서 그들이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미리 씻어놓은 쌈 채소를 그릇에 담는다. 찬물에 담가 두었다가 물기 빼놓은 파채를 양념에 무친다. 기름장을 만들고, 기름장, 쌈장, 김치를 그릇에 담아둔다. 그들이 도착했다. 서둘러 팬을 달구어 한우를 굽기 시작한다. 치이익-. 고기가 익었다. 잘 익은 고기를 아이들이 먹는다.



   이 고기는 그러니까 이모가 보내주신 것이다. 우리 이모 성금 씨는 엄마 성심 씨의 자랑이자 예쁜 여동생이다. 사 남매의 맏이인 성심 씨는 아래로 남동생 두 명,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 한 명이 성금 씨다. 성금 씨는 성심 씨보다 11살이나 아래인 관계로 성심 씨가 거의 업어 키웠다고 한다.


   살아생전 성심 씨의 바람은 내가 꼭 성금 씨 같은 딸이 되는 거였다. 공부도 잘하고 장학금도 척척 받고, 취직도 빨리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는 그런 딸. 게다가 늘씬하고 예쁘고 우아하기까지 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것 말이다.


   성심 씨의 바람은 애석하게도 대부분 이뤄지지 못했다. 성금 씨와 진심이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둘은 성심 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조금 더 애틋해졌다. 그러니깐 우리의 공통분모는 성심 씨가 되었다. 성심 씨와의 기억을 공유하는 추억메 이트가 됐다.


   어렸을 적, 성탄절 연극에서 마리아를 도맡으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교회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라며 아쉬워했던 성심 씨의 푸념을 공유한다. 얼마 전, 성금 씨가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언니가 살아 있다면 좋아했겠지, 그럼요~ 엄마가 엄청나게 좋아하셨을 거예요. 그런 대화들.


   남 서방이 목사 안수를 받은 걸 알면, 언니가 정말 기뻐했을 거야. 담임 목사님이 된 걸 알면 얼마나 뿌듯해했을까. 그러게요. 엄마가 계셨다면 참 흐뭇해하셨을 거예요. 때론 말로, 때론 그저 눈빛으로, 때론 수화기 너머 잠깐의 흐느낌으로 우린 성심 씨를 나누고 기억한다.


   성심 씨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성금 씨는 명절 때마다, 어린이날마다 꼬박꼬박 선물을 보내주신다. 나물이, 까꿍이와 함께 식사라도 하렴. 맛있는 거 챙겨 먹어. 건강하게 잘 지내. 남 서방도, 아이들도 잘 있지? 우리 진심이도 잘 지내는 거지? 건강이 최고야. 건강 잘 챙기렴.


     

   그렇게 또 성금 씨의 진심이 도착했다. 성심 씨를 대신한, 성금 씨의 성심이 도착했다. 그 마음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성심 씨와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데, 늘 이렇게 한가득 마음을 보내주신다.


“이모, 정말 감사해요. 보내주신 선물 잘 받았어요. 마침 까꿍이 생일이라 저희 모두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온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바랄게요. 언제나 주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시기를 기도할게요. 꼭 한 번 찾아뵐게요~ 감사해요.”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서른두번째

#Cre쎈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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