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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7. 2023

114시간 21분 + @

오전 7시 15분. 평소라면 곤히 자고 있을 시간이다. 부스럭거리며 외출 준비를 한다. 토요일 아침의 이상적인(?) 기상 시간은 오전 10시 전후인 내가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 이유는 ‘2023년 다문화 교육 전문가 양성 기본과정 연수’에 가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일하려면 강사들조차도 꼭 들어야 하는 법정 의무 연수가 있다. 청렴 연수,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연수 등. 채용 때 이수증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그런 연수들은 매년 다시 들어야 하는데, 매년 똑같은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많이 지치곤 한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교원들은 1년 동안 꼭 들어야 하는 연수 의무 시간이 있다. 때론 이 요건이 성과급을 매길 때, 점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곤 한다. 참고로 우리 학교는 1년에 60시간 이상만 들으면 된다.


   어쨌든 법정 의무 연수를 듣고, 직무와 관련된 연수를 두어 개 더 들으면 60시간은 금방 채워지곤 한다. 나이스 상으론 매해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가 1년 기준으로 이수 시간이 카운트된다. 실제 성과급을 위한 평정이 이뤄지는 건 12월 초, 대부분의 법정 의무 연수 이수증을 제출해야 하는 기간은 10월 말쯤. 그러니깐 지금쯤 이미 60시간의 연수는 다 채우고도 남는 시기다.


   99시간 21분. 어제 확인한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의 연수 이수 시간이다. 그러니깐 난 이미 모든 시간을 채웠더랬다. 오늘 연수까지 이수 완료가 된다면, 114시간 21분이 되는 셈이다. 연수에 있어서만큼은 무소유의 삶을 살기에 99시간 21분으로 만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주말에 듣는 연수는 특히 더 피하게 된다. 나또 님은 무조건 출근해야 하니,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 게다가 몇몇 강의는 지난 2월에 들었던 강의와 강사도 강의명도 똑같았다. 아직 연수관련한 공문의 담당자도 정해지기 전이라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어쩌다 신청을 하게 됐다.(당연히 자의는 아니다) 이게 기본 과정인데 이걸 들으면, 내년 1월에 있을 심화 과정도 들을 수 있다나?! 그걸 듣는다면 2023학년도 연수 이수 시간은 114시간 21+@가 되겠지?!


   사실, 연수를 듣기 싫은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이미 만족할 만한 연수 이수 시간이 있었고, 주말이고, 내가 침대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토요일이며, 이미 지난 2월에 비슷한 내용을 들었다. 결정적으로 이걸 듣는다고 ‘다문화교육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아주 명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에 어디에서 일할지, 지금 일하고 있는 자리가 계속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꾸물대고 움직인 건, 어쨌든 신청을 했고, 뭐라도 하나 건질 수 있을까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토요일 아침의 아침잠도, 최근 들어 그 무엇보다 소중해진 토요일 아침의 최애 루틴, ‘하브독토_C조 모임’도 모두 모두 포기하고 가는 것이니, 뭐라도 꼭 하나는 건져야 했다.


   평소 연수가 열리던 동네가 아닌, 항구 근처다. 연수등록을 하고 강의실로 들어서니,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일단 오션뷰 하나는 건졌다. 오늘의 메인 강사이신 교수님이 꽤 재밌다. 게다가 다문화 교육 쪽으론 거의 시조새 격이다. 더 감사한 건, 충분히 고인 물인 채로 있어도 될 것 같은데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신다. 오전, 오후 6시간 강의를 듣는데 뭐 하나 흘려들을 게 없다. 두 개 건졌다. 이번 주는 예식이 없어 점심이 뷔페다. 세 개 건졌다.


   교수님 강의가 끝났다. 오늘의 마지막 강사 분이 부장님을 통해 그랬단다. 지난 2월 강의 내용과 너무 똑같아서 민망하니, 제발 먼저 가 달란다. 속으로 야호를 외쳤지만, 냅다 먼저 나갈 순 없어서 조금 앉아 있었다. 슬금슬금 부장님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아뿔싸. 장학사님이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엘리베이터 주위를 배회하신다. 여긴 14층이니,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비상계단은 요상하게 강의실 중간에 입구가 있다. 부장님은 어찌어찌 먼저 나가신다. 나 먼저 갈게, 조금 이따 뒤 따라 나와. 입 모양으로 이야기하시고 스스슥 가셨다.


   조금 이따 나는 나왔다. 강의가 끝나고 모두와 함께. ‘조금 이따’는 그렇게 1시간 30분이 되었다. 아, 안타깝게 눈치껏 탈출은 건지질 못했다. 어쨌든, 뭐라도 하나 건지자 싶어서 갔고 벌써 세 개나 건졌으니 감사한데, 제일 바라고 원하던 꿀 같은 탈주(?)는 건지지 못해 다소 아쉽다.


   당장 이걸 내일모레 학교에서 써먹을 수도 없다. 내년에도 어찌 될지 모르겠다. 바라건대 그렇더라도 오늘 투자한 8시간이 부디 언젠가 결실을 보기를 기도해 본다. 올 한 해 내가 구겨 넣은 114시간 21분+@가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는 결과로 도출되기를 바라며... 이상.        

    

#쓰고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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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연수_시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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