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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느릿한 만찬

오늘의 한 끼_비빔면과 삼겹살

by 여느진

2020년 10월 25일, 오후 2시 8분


오전에 눈뜨는 주말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 하루가 조금 더 길어졌다. 집에서 커피를 준비하는 게 일을 하려고 몸을 강제로 깨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로 위안이 되는 진짜 주말.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음악방송을 기다리고, 괜히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보고.


여유를 즐기다 보니 첫 끼니가 늦어졌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조급할 필요도 없고, 원하는 만큼 늦장 부려도 되는 일요일의 특권 아닌 특권.


주말은 왜인지 라면이 생각난다. 이전에 일요일마다 첫끼니가 당연하게 큰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은 후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게 은연중에 자리 잡은 우리 가족의 관행이었던 때가 있다. 일요일을 맞이하는 하나의 의식 같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늘은 그때보다 좀 더 화려해진 라면을 먹기로 했다.


비빔면에 삼겹살 구이는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알게 된다면 감사인사를 꼭 전하고 싶은 조합이다. 매콤 새콤하고 촉촉한 비빔면에 바싹 구워진 삼겹살을 올려 싸 먹으면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여기에 알싸한 파김치를 올려먹는다? 끝난다. 여유로운 주말을 화려하게 장식해준다.


하루가 아주 천천히 굴러갔다. 늦은 첫끼니도 마찬가지. 결국 삼겹살이 다 식어 한 번 더 데워올 때까지 먹었다. 아이스크림도 꺼내먹고 빈둥대기도 하고. 평일 동안 미뤄둔 게으름을 잔뜩 끌어왔다. 느려도 괜찮은 오늘, 만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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