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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조금만 더

오늘의 한 끼_치즈 새우 김치볶음밥

by 여느진

2020년 11월 2일, 오후 12시 43분


밥값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류장에서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전화로 전해 들으며 멍해졌다. 버스 하나를 그냥 보내고, 정신 차리고 겨우 타고서 창밖을 보며 저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내 밥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지금 하는 직업과 관련 있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덜 일하고 더 높은 급여를 받으며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에 부담감도 자랐다. 학점도 잘 챙기고 싶고, 맡은 일도 잘하고 싶어서 잠을 줄였다. 밤새 자료를 준비하고 난 후 일을 시작하기 직전에 늘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돈값하자. 제대로 된 첫 직장에서도 들었다. 원장님이 막 신입으로 들어온 내게 늘 돈값한다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아직도 출근하며 그 말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데 오늘 나는, 그렇게 했나?


오늘은 아침부터 약간씩 꼬였다.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좀 더 여유롭고 싶었는데, 11월의 첫 출근이 급박해졌다. 오늘 계획대로 흘러간 건 어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나온 것뿐. 마음도 어지럽다. 일 년에 네 번, 나는 내 일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야 한다. 그때마다 기분은 용수철처럼 이리저리 튄다.


출근 전에는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새우도 몇 개 잘라 넣고, 치즈도 조금 넣었다. 가장자리를 조금 태워 누룽지같이 바삭거리기도 했다. 사실 조금 아쉬운 맛이었다. 지금 내게 남은 아쉬움 같은 딱 그런 맛. 조금 더 무언가를 넣었다면 더 맛있었을까? 아쉬움 앞에서 하는 후회는 언제나 조금만 더를 가정하게 된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없는데도.


새로운 신발에 적응하느라 욱신거리는 발. 모두가 지친 퇴근길. 바람은 차고, 이어폰은 배터리가 다되어 들리는 소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뿐. 그저 멍하니 창 밖이 바뀌는 모습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가족들에게 살짝 투정도 부리고, 곱도리탕도 시켜먹었다. 맥주도 마셨다. 보고 싶었던 '작은아씨들'도 틀어놓고. 동생이 꼭 누나를 보는 것 같다는 '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이 저녁의 풍경이 조금만 더 이어지면 좋겠다. 내일의 출근이 오늘은 조금 버거우니까.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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