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참치 비빔밥
2020년 11월 3일, 오전 11시 56분
아침에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이불속으로 웅크렸다. 계절의 흐름이 살갗에 맞닿은 탓이었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다리던 앨범을 뜯는 일. 잔뜩 호들갑 떠는 나를 따라 하는 동생이 웃기고 얄미웠지만 함께 먹을 밥을 차려줘서 참았다. 커피를 타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럽을 동생의 것에 넣어주며 아침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도 작게 표했다. 조금 열어둔 창문에서 느껴지는 한기와 소란함이 섞인 오전이었다.
본래 어젯밤에 먹고 남긴 곱도리탕을 먹으려 했으나 다시 데워보니 어제의 맛이 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삼겹살을 구울까 했으나 꽝꽝 얼어 나가야 할 시간에 맞출 수 없어 포기했다. 사실 엄마가 어제 내일 삼겹살 먹을 수 있게 준비해주겠다 했는데, 우리가 거절했었다. 이런 게 엄마의 지혜라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우리가 먹은 건 참치 비빔밥. 동생이 동그랗고 노란 반숙 계란 프라이를 해줬다. 아무것도 더 넣지 않고 참치를 밥 위에 덜고 참기름을 한 번 두른 후, 고추장을 크게 한 숟갈 퍼서 슥슥 비벼먹었다. 별거 없어도 맛있긴 했다. 배도 어찌어찌 불렀다.
한참을 둘이서 패딩 입을지 코트 입을지 고민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고 코트를 입었다. 퇴근길, 솔직히 좀 많이 추운데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동네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예전 앨범들을 무더기로 판매한다는 글을 봤다. 왕창 샀다. 팔이 빠질 것 같다. 그래도 어쨌든 만족스럽다. 무거운 팔만큼 마음이 풍족하다.
달이 꽉 차진 않았지만 눈부시다. 도로 위에 빛을 발하는 수많은 가로등과 견주어도 밝기가 비슷하다. 조금 덜 찬 저 달은 하늘 위 가로등처럼 사람들의 밤을 밝히고 있다. 어쨌든 저 달도 가로등인 셈이다.
하루가 전부 뭔가 하나씩 덜 채워졌다. 그래도 어쨌든 괜찮다. 어쨌든 하루가 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