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낙지 김치죽
2020년 11월 4일, 오후 10시 2분
어제 매서웠던 바람에 지레 겁먹고 롱 패딩을 들고 헐레벌떡 나선 출근길.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결 높아진 기온에 롱 패딩은 짐이 되었다. 거대한 침낭을 품에 안고 버스에 앉아있는데, 마음이 영 불편했다. 시간적인 여유도 그렇고, 과연 밤에 롱 패딩이 걸맞을 만큼 추워질까 싶고, 동생이 내가 부탁한 일을 잘 처리할까 싶고. 뜨끈한 햇살에 롱 패딩을 올려둔 무릎이 펄펄 끓었다. 버스에 내려서도 왜인지 패딩을 걸칠 수 없었다.
사실 오늘 내가 출근하며 지녔던 짐덩이는 더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속이 안 좋다고 말하는 엄마에 대한 걱정이 올라왔다. 어제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가 위경련이 온 것 같다는데, 직장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익히 들어서 더 걱정됐다. 엄마의 배를 날카롭게 찌르고 괴롭히는 것들이 나도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일하는 내내 웃을 일이 많았다. 동생의 우스운 실수도 있었고, 뜻밖에 마주한 귀여움들도 있었다. 그래도 영 마음 한구석이 따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라던 만큼 엄청난 한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롱 패딩을 입길 잘했다 싶은 쌀쌀한 퇴근길. 정류장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직도 아픈지 물어봤고, 엄마를 위한 전복죽을 시켰다. 하루 종일 이 리치이고 저리 치여 잔뜩 뿔나 있을 엄마의 속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며. 그리고 나를 위한 낙지 김치죽도 시켰다.
조금 매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드러운 오늘의 한 끼. 나란히 앉아 죽을 차근차근 비우며 날 서있던 속이 차츰 매끈해지고 있었다. 중간에 씹히는 밥알과 쫀득한 낙지 조각들, 그리고 매콤함을 나눠주는 김치의 파편들. 모두가 걱정과 염려로 솟아있는 마음의 뿔을 깎아냈다. 하얀 전복죽을 다 비워낸 엄마의 표정도 밝았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포근해진다고 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날 서있는 마음의 파편들이 굴러다닌다. 오늘의 부드러움이 차가움을 이겨내는 온기처럼 안아주면 좋겠다. 이 따스한 부드러움이 너무 고맙지만, 그래도 자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