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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푹신해지고 싶어

오늘의 한 끼_계란말이와 된장찌개

by 여느진

2020년 11월 8일, 오후 2시 27분


기분은 왜 늘 변하는 걸까. 변화가 삶의 재미를 가져다준다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 재미가 싫다. 짜증이란 무릇 갈무리하려 애써도 새어 나오기 마련이라 얼굴의 표정이 내내 풀어지지 않는다. 인상을 지었을 때 생기는 주름이 감정을 동여매 생기는 천의 주름인 것처럼 단단히 얼굴에 박혔다.


본래 성정이 예민한 편이라 이럴 때면 말 끝이 날카로워진다. 나도, 타인도 함께 베어버릴 수 있는 날카로움이라 실없는 소리를 제하곤 주변인과 대화 자체를 자제한다. 집에서는 방문을 꼭 닫고 이불 안에 파묻혀 있거나, 스티커나 포토카드 같은 것들을 정리하거나, 최대한 혼자 있으려고 한다. 접촉이 상처를 만들지 않았으면 해서.


일어나서부터 기분이 영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들었는데, 그 탓인 건지 뭔지. 눈을 뜨면서부터 오늘은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미리 굵직한 일들을 마무리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이렇게 잔뜩 날 선 채로 나온 나를 반기는 건 파를 쫑쫑 썰어 넣은 계란말이. 조기구이와 된장찌개도 있었지만, 식탁 위에서 샛노란 색으로 시선을 단순에 사로잡는다. 엄마가 계란을 일곱여 개를 풀어 넣었다는데, 한눈에 봐도 두께가 도톰하고 푹신해 보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짭조름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입 안에 가득 찬다. 계란물과 열기에 아삭함을 잃어 조금 물컹한 파도 중간중간 씹힌다. 밥에 된장찌개의 흐물한 애호박과 쉽게 바스러지는 감자를 국물과 덜어와 비벼먹고, 다시 계란말이를 한 입 베어 문다. 순식간에 밥이 사라진다.


식탁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지나치게 밝아 눈을 뜨기 어려웠다. 내 찌푸린 얼굴이 들쭉날쭉한 기분 탓이 아니라 이렇게 햇빛 때문이면 차라리 좋을 텐데. 푹신함을 계속 씹어 넘겨도 마음속 날은 뾰족하다. 오히려 푹신함이 날카로움에 찔려 조각난다.


저녁을 먹고 노트북에 앉은 나. 동생이 잘라다 준 노란 망고 조각들이 낮의 계란말이를 생각나게 한다. 요거트에 잔뜩 적셔진 망고 조각들과 내 취향대로 아주 진하게 탄 밀크티를 마시며 좋아하는 가수의 몇 년 전 영상을 한편에 틀어뒀다. 마음이 아주 조금 몽글몽글해진다. 뾰족함이 누군가의 상처가 아닌 더 멋진 조각을 내기 위한 것이면 좋겠는데. 조금 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지금보다 더 푹신해졌으면,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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