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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특별함의 비밀

오늘의 한 끼_분홍 소시지부침

by 여느진

2020년 11월 13일, 오후 9시 54분


일할 때는 언제나 정신없지만, 금요일은 특히 더 분주하다. 주말을 앞둔 마지막 평일은 해야 할 일이 유독 많아지는 편이다. 오늘도 여느 금요일과 비슷했다. 똑같이 바빴고, 정신없었고, 일이 휘몰아쳤다.


퇴근하는 길, 선물 받은 귀여운 작은 가방을 덜렁거리며 환승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는지, 무얼 먹고 싶은지 등 시답잖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버스 창가를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내일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퇴근길이라니, 바쁘게 지나간 하루에 대한 보상일까.


엄마가 부탁한 대로 맥주를 사러 들른 마트.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트에만 오면 필요한 물건 외의 다른 것들도 손에 쥐고 나오게 된다. 마트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내 품에는 길쭉한 분홍색 소시지와 맥주 두 캔, 다 떨어진 시리얼이 자리 잡았다.


결국 늦은 저녁 밥상 위에 놓인 건 계란물을 입힌 분홍 소시지. 어릴 적에 이 반찬이 상 위에 올라오면 밥을 두 공기씩 비우기도 했었다. 밀가루 반죽을 씹는 느낌이기도 하고, 맛이 특별하진 않은데 계란물을 입히면 뭔가 맛있게 느껴졌다. 오늘처럼 비빔밥이랑 먹으면 더더욱. 시간이 흘러 점점 찾지 않다가 술집에서 추억의 도시락 같은 메뉴를 시킬 때나 보게 됐다. 따지고 보면 엄마 아빠의 추억일 텐데, 나는 꼭 내 추억을 맛보는 것처럼 도시락을 신나게 흔들어댔었다. 이 분홍색 소시지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엄마와 맥주를 기울이며 먹는 분홍 소시지라니. 괜히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엄마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지도,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저 나물이 아닌 다른 반찬이라는 사실 만으로 기뻐했고, 내일은 학교에서 무얼 할지 고민했었는데.


물컹하게 씹히는 소시지가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오늘의 나. 충동적으로 마트에서 들고 나온 건 그래도, 조금은, 어린 날의 내가 그리워서였을까. 이 분홍 소시지가 계란을 만나 특별해진 건지, 아니면 계란이 분홍 소시지를 만나 특별해진 건지. 자고 일어나면 사라질 질문들의 답이 문득 궁금해지는 그런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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