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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현실 꿈꾸기

오늘의 한 끼_꼬막 비빔밥과 해물 뚝배기, 그리고 소주

by 여느진

2020년 11월 15일, 오후 5시 9분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겪었던 힘든 길을 비슷하게 겪는 친한 동생에게 해줄 말이 없어서 슬퍼졌다. 이 친구가 누구보다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같은데도. 나이의 앞자리가 1일 때 만나 어느덧 2로 변해 삶의 굴곡을 만나 힘겹게 버티는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를 수식하는 숫자에 더해지는 매 년. 숫자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어깨가 아래로 내려간다. 아직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 아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의 틈에서 어떤 태도로 세상을 맞이해야 할지 모르겠다.


충동적으로 바다를 보러 왔다. 대가로 잠을 포기했고, 그만큼의 카페인을 섭취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무런 계획 없이 이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더 괜찮은 일이었다. 거의 1년 만에 보는 동생과, 주말 이른 시간에, 새파란 동해바다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라는 것도.


빛이 바람에 흔들리고 바닷물에 으깨지는 윤슬을 멍하니 바라보며 노래를 듣고,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고, 선물가게에서 엽서를 사서 서로에게 글을 써주고 하는 모든 시간들이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었고, 몇 시간 후 돌아갔을 때 만나게 될 일상이 꼭 오지 않을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술을 절대 마시지 말자, 약속했건만 우리는 결국 소주 뚜껑을 땄다. 긴 산책을 끝내고 이끌리는 대로 들어온 가게. 그릇이 예뻤고, 밑반찬이 맛있었다. 조개가 잔뜩 들어간 해물 뚝배기의 시원한 국물을 마셨고, 짭조름한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중간중간 조금은 단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 소주를 삼키며 나눈 이야기는 너무 묵직해서 내가 들고 온 작은 가방에는 차마 담을 수 없었다. 우리 사이에 있는 공백은 서로가 알지 못하는 묵직함이 가득했다. 이건 바다의 맛인 걸까, 아니면 아득한 꿈의 만찬인 걸까.


때로 현실을 견디는 일이 꿈같을 때가 있다. 좋은 의미는 아니고, 조금 나쁜 의미로. 곧 깨어날 것을 알지만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온 몸을 짓누르는 불쾌한 기운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하는 그런 꿈. 좋은 꿈을 꾸고 나면 허무해지고, 나쁜 꿈을 꾸고 나면 찝찝해진다. 휘몰아치는 꿈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지금, 나는 허무함을 느끼고 있는 걸까.


몇 시간 후면 다시 월요일. 바다를 보며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 앞에 놓인 풍경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과정들. 현실을 꿈꾸러 가는 길이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급격하게 밀려오는 피곤함에 내려앉는 눈이 방금 전 바다를 꿈꾸러 가는 여정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른이라는 꿈을 꾸러 돌아가는 길,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가볍길 바라는 마음. 핸드폰에 담긴 오늘의 기억들이 가혹한 꿈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도와줄 거라 믿는다.


이제 정말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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