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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시간이 가져간 것들

오늘의 한 끼_탕수육과 짜장면

by 여느진

2020년 11월 16일, 오후 12시 10분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든 어제. 잠들기 직전에 생각했던 건 내일 일어나면 꼭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어야지... 였다. 그리고 일어나서 실행에 옮겼다.


짜장면은 주기적으로 생각난다. 어느 중국집에 시켜도 비슷한 짜고 건강하지 않은 것 같고 맛있는 맛. 사실 매운 국물이 생각나서 짬뽕도 잠깐 떠올렸지만, 어제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일을 어길 순 없었다. 주문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한 짜장면. 이만큼 내게 빨리 오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짜장면은 쉽게 시켜먹을 수 있는데, 탕수육은 어쩐지 쉽지 않았다. 문장의 맺음이 과거형인 이유는 이제 나는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원해서 시켜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탕수육이 먹고 싶으면 큰 고민 없이 시켜먹을 수 있다. 탕수육도 시켜달라 조르지 않더라도 새콤한 소스와 두툼한 튀김옷에 감춰진 고기를 씹을 수 있다. 어떻게 내가 탕수육을 먹고 싶은지 설득할 필요도 없다. 시간이 가져간 고민의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 내게 남은 고민은 탕수육 소스를 찍어먹을 것인지, 부어먹을 것인지 정도뿐.


오늘도 역시 익숙한 맛. 예상했던 맛 그대로. 그래서 참 편안했다. 어쨌든 오늘도 맛있었다.


익숙한 출근길, 귀퉁이 페인트가 벗겨진 건물이나 간판들이 눈에 유독 거슬렸다. 이틀 전부터 빠진 노래의 가사를 속으로 읊조리며 시간이 만들어낸 흐림을 곱씹었다. 갓 페인트가 칠해지고, 갓 건물에 매달렸을 때 풍경은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 거리에서 시간이 가져간 건 반짝 거림 일까. 남겨진 거리의 흔적이 쓸쓸해 보이기도, 굳건해 보이기도 해서 마음이 이상했다.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다음으로 넘어갔고, 같은 가수의 노래였지만 분위기는 이전 것과 정반대였다. 딱 이 정도의 변화를 시간을 남기고 간 걸까.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거렸다. 커피를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버티는 하루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농담처럼 내뱉곤 했던 내 몸의 피는 반은 카페인일 거라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커피를 입에도 못 대던 때가 있는데, 이젠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서는 하루를 제대로 견딜 수 조차 없다니. 시간이 가져간 건 카페인 없이도 괜찮은 하루, 남겨둔 건 커피의 씁쓸한 맛.


지나치게 화려한 저녁의 밥상. 그중엔 낮에 먹고 남겨둔 탕수육도 있었다. 낮에 먹었던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은 사라졌다. 몇 시간이 사라지면서 처음의 맛도 함께 떠나고, 남은 건 눅눅함이었다. 시간이 가져가고 남은 것들이 늘 처음과 같다면 좋을 텐데. 아니 애초에 가져가지 않을 수는 없을까. 비현실적이지만 괜히 바라게 되는 그런 날. 그래도 언제든 엄마가 맥주를 마시고 싶어 할 때 편하게 사다 줄 수 있는 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겠지. 시간이 가져가서, 그래서 가능하게 된 수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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