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끼_돈가스 김밥과 치즈라면
2020년 11월 17일, 오후 7시 30분
출근 전에 동생이 끓여준 라면을 먹었다. 집에 남아있는 시럽이 얼마 없어서 애매한 맛이 나는 커피도 마셨다. 이따가 꼭 닭가슴살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시럽이 담뿍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마셔야지 다짐했다.
그러니 원래 예정대로라면 내 저녁은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여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삶의 나침반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예측은 쉽게 어그러진다. 스케줄러에 쓰인 계획들이 항상 완료했다는 표시가 위에 덧그려지는 게 아닌 것처럼.
나는 생각이 늘 많다. 멈춰서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도 머릿속은 계속 움직이는 중이다. 출근길 택시 안에서 이어폰도 귀에 꽂지 않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바람소리가 배경음악 같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흐리네, 이따 저녁에 비가 온다는데 벌써 습기를 머금으려는 건가 같은 생각들이 쉬지 않고 떠오른다. 이렇다 보니 관계의 끝이나 일이 잘못될 때 이유를 계속 찾으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일지 모른다. 한때 습관처럼 내뱉던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는 저런 모습을 감추려는, 그리고 나를 자책하지 않기 위한 방어지책이었을테지.
퇴근하고 나오는 길에 아침에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분식집에 들어갔다. 참치김밥을 먹을까 했는데 막상 주문한 건 돈가스 김밥이었다. 아침에도 먹은 라면을 굳이 또 시키기까지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려 했는데 딱히 떠오르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 무의식이 먹고 싶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불순하지만 돈가스 김밥의 단면이 꼭 욕 같다고 생각했다. 사회에 나와서 먹어야 하는 욕을 이렇게 복수하는 건가. 단출한 돈가스 김밥이었지만, 눅눅한 튀김옷이 밥알과 씹히는 맛은 고소하고 맛있었다. 중간중간 꼬들한 면발과 치즈라면의 매콤하고 자극적인, 그러면서도 구수한 국물을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입이 짧은 내게는 정말 과한 저녁식사였다. 나는 이런 과한 포만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여전히 모를 내 저녁의 이유.
결국 마지막은 계획대로 큰 사이즈의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넛 시럽을 왕창 넣어 마셨다. 배가 불러 커피가 들어가는 길이 버거웠다. 그래도 비로소 안정감이 느껴졌다. 어긋난 길의 마지막을 올바르게 돌려놓은 것 같아서. 예상치 못한 비에 가방 속 미리 준비되어 있던 우산을 펼쳐들며 오늘도 예측과 어긋남과 준비가 반복되는구나 생각했다. 그럴 수 있지. 그래야 재밌지. 다음 해 다이어리를 4개나 산 나와, 올해 산 다이어리 중 어느 것도 끝까지 채우지 못한 내가 번갈아 떠올랐다. 그럴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