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한 끼 : 스테이크
2019년 1월 20일, 오후 5시 59분
오늘도 변함없이 눈을 떴고, 시간은 흐르고, 하늘은 흐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저으려 덤볐다.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예감했다. 일찍 일어났지만 택시를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출근하며 타는 택시는 내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이 거센 우울의 강을 잘 건너라고 던지는 부표 같은, 그런 존재이기에.
카페인의 힘을 빌려보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시기도 했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 입었던 것과 비슷한 복장을 하기도 했고, 주말에 바다에서 윤슬을 바라보며 들었던 노래를 무한 반복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흐린 하늘을 부유하는 구름이 습기를 이기지 못하고 간헐적인 비가 되어 내리고, 우산을 챙겨 왔지만 어쩐지 난 계속 젖는 것만 같았다.
빗물에 젖어 땅에 눌어붙은 빨간 별들과 노란 말발굽들 위로 옮기는 발걸음. 바람에 따라 땅에 내려와, 무거운 물방울에 뜻하지 않게 바닥과 밀착하게 된 그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그리고 나를 떠올린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이만큼 오래 하게 될 줄 알았을까? 나를 수식하는 명칭의 잉크가 말라갈수록 기분은 오히려 여기저기 튄다.
이럴 때면 가만히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을 살펴본다. 그리고 내가 이 월급을 통해 할 수 있게 된 것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첫 월급에 대한 것. 첫 월급으로 많은 걸 했지만, 그중 단연 오래도록 품을 소비는 엄마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한 일. 둘이 손잡고 영화를 보고, 노을이 잘 보이는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파스타를 먹는 장면은 조금 낯설기도, 들뜨기도 했다. 어색해하는 엄마에게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느릿하게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땐 붉은 노을이 다 지고 검푸른 하늘이 창 밖에 펼쳐져 있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둘 다 붉은 물든 코를 지니고 집으로 갈 때서야 아, 내가 정말 첫 월급으로 엄마에게 스테이크를 대접한 거구나, 실감이 났다.
엄마와 뮤지컬을 보고, 여행을 가고,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맛있는 야식을 먹게 해 준 모든 원천이 이 통장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피곤해할 때 피로 해소 음료를 보내줄 수 있고, 무언가를 배워볼까 고민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앨범을 살 수 있고, 우울한 날에 맥주 한 캔을 사 올 수 있고, 동생에게 용돈을 줄 수 있고.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 준 통장을 채우러 나는 오늘도 나갔고, 내일도 나가겠지.
첫 월급을 받던 때처럼 통장을 확인하는 손길이 떨리진 않지만, 그때만큼의 설렘도 없지만.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모든 일들이 결국 이 통장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긴다. 잔뜩 눅눅해진 오늘, 흘러내리듯 이 순간들에 늘어졌다가 내일은 다시 주워 담아 일어서야지.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며,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