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음료 : 밀크티
2020년 11월 22일, 오후 9시 33분
드디어 손에 쥔 진짜 주말. 그런데 평일보다 더 무기력하다. 주말이니까 당연할 수도 있지만, 정말 밥 먹으러 일어난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계속 침대 위에 누워만 있었다. 이런 시간을 일주일 내내 기다려왔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요즘은 계속 마음이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마음은 생각의 바다를 헤엄친다. 사실 나는 수영할 줄 모르니 허우적댄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 지상보다 더 높은 압력을 견디며 움직여야 하니 후에 느끼는 근육통은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그룹 멤버의 생일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텐츠가 올라오기도 했고, 좋아하는 브이로거의 영상도 올라왔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도 읽기 시작했는데. 좋아하는 걸로 잔뜩 채워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자꾸 무언가 빠져나간다.
커피 원액으로 집에서 커피 타 마시는 일에 익숙해지고 나서 밀크티 원액도 주문했다. 취향대로 진하게 마실 수 있어서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더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예전 사진들을 쭉 올려다보다 2년 전쯤, 밀크티에 한창 빠졌을 무렵 사진들을 보고 밀크티가 마시고 싶어 졌다. 좋아하는 브이로거의 영상에서도 밀크티가 나왔다. 이렇게 생각날 때 바로 마실 수 있게 됐으니 어쩌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위해 준비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싫어했던 것이 취향으로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커피를 싫어했던 내가 카페인 중독이 된 것처럼, 밀크티도 별로 좋아하지 않다가 커피 다음으로 찾는 일명 차애(次愛) 음료가 되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 데가 생각했던 것보단 괜찮네로 바뀌고 나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진행된다. 빨대를 휘저을 때마다 새하얀 우유가 저보다 짙은 밀크티의 원액과 섞여 이전의 색을 잃어가는 속도만큼이나.
살짝 쌉쌀한 맛이 나는 것 같기도, 그냥 단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특유의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마시다 중간에 밥을 먹으러 갔고, 어쩌다 속에 있는 걸 꺼내게 됐고,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 그 와중에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밀크티를 한 모금 마셨을 땐 처음의 진한 맛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수면에 떠있던 얼음의 크기도 많이 작아졌다. 지나가는 시간이 참 빠르다. 주말이 이제 몇 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가는 모든 과정이 꼭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호의 감정도 같이 빠져나가면 좋겠는데. 언젠가는 이 시간도 취향이 될까.
내일은 내가 떠있는 수면이 높아져있을까, 아니면 조금은 낮아질까. 그저 근육통이 덜 세게 왔으면 하는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