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 : 유부초밥
2020년 11월 21일, 오후 2시 5분
다시 찾아온 주말 출근. 평일보다 좀 더 늦춰진 출근 시간과 짧은 근무 시간에 뭔가 놀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이 출근 전에 도착한 것도, 새벽에 충동적으로 구매한 전자책 5권을 이북리더기에 다운로드하는 과정도 설렘에 한몫했다. 그리고 제일 출근 전 시간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 건 역시 유부초밥.
유부초밥은 소풍날에 김밥 대신 자주 등장하곤 했다. 쟁반에 하나 둘 쌓여가는 반원을 몰래 집어먹기도 하고, 때로 직접 단촛물을 삼킨 밥알을 유부주머니 안에 눌러 담기도 했다. 불을 사용하지도 않고, 마트에서 파는 제품 그대로 사서 따라 하면 되니 요리를 못하는 나도 재주 부리기 좋았다. 때로 게맛살을 찢어 마요네즈와 섞은 것을 올리기도 하고, 참치를 마요네즈와 섞어 올리기도 했다. 내게 있어 유부초밥은 작은 자신감이자 작은 설렘 같은 그런 것.
그러니 내가 오늘 출근 전에 채워 넣은 건 단순한 유부초밥이 아니라 어떤 마음이라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엔 설렘과 평온함, 그런 긍정적인 무언가가 섞여있고. 접시에 가득한 유부초밥을 햇살이 벅차게 들어오는 거실에서 가족과 하나씩 집어먹는 일. 새로 바꾼 향이 유독 강한 헤이즐넛 시럽이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실없는 소리를 하고. 보고 싶었던 책들을 읽을 생각에 들떠있는 시간. 부엌에서는 저녁에 먹을 엄마표 특제 감자탕이 끓고 있고, 맛있는 저녁을 예고하는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래, 이러한 마음.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 구매한 겉옷을 처음 입고, 조금 늦게 일터로 출발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마음이 느긋했다. 출근 전에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얼마만이지. 당장 어제만 해도 출근하기 싫어 눈물을 글썽였는데. 나조차 나를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월요일이 되면 또 오늘과 정반대의 마음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계속 집 밖으로 나와 일터로 향할 수 있게 해주는 건 듬성듬성 놓인 이런 평온함 덕분이다. 딱 가라앉아 더 이상 떠오르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 이런 가볍고 산뜻한 마음은 발 디디고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 준다. 상큼한 밥알이 조금은 무거운 유부와 함께 섞여 가벼운 맛이 되는 것처럼. 부른 배처럼 다시 묵직하고 어두운 돌이 놓여있어도 나아갈 수 있게. 징검다리에 올라서서 내일을 볼 수 있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