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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소화제 같은

오늘의 한 끼_치즈 곱창볶음과 맥주

by 여느진

2020년 11월 30일, 오후 10시 33분


출근을 코 앞에 둔 새벽, 침대 옆 커다란 창에 보이는 감청색의 농도가 옅어질 때에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왜인지 불안하고, 걱정되어 쉬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생각은 언제나 시간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때문에, 그가 흘린 시간의 찌꺼기는 흉한 편이다. 더럽혀진 생각의 식탁 위에서 깜빡 졸았다 깬 후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잔해를 정리하는 일. 하루 종일 부산스럽고 멍했다.


오늘은 대략 1년 8개월 정도 몸담은 이 직장에서 날 챙겨주시던 원장님과 부원장님의 마지막 날. 새로운 원장님과 함께 서있는 두 분을 보며 아, 오늘이 정말 이 두 분과 이 공간에서 함께 있는 마지막 날이구나, 실감했다. 그때부터 마음 한 편에 불편함이 얹혔다. 체한 것처럼 더부룩한 기분으로 하루를 일했다.


내일도 나는 똑같은 장소로 일하러 갈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하겠지. 보낼 하루도 비슷할 거고. 변화가 있겠지만 당장 내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일이면 내가 그동안 보내온 일상이 완전히 정반대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함. 날은 시리도록 추운데, 내가 밟고 있는 얼음판이 더 이상 단단해지지 않고 내일이면 다 녹아 없어져버릴 것 같은 그런 감정이 계속 올라왔다.


집에 오는 길, 곱창이 먹고 싶었다. 질겅질겅 쉬이 넘어가지 않아 오래 씹을 수 있는 곱창. 오래 곱씹어야 하는 매운맛을 입에 담고 나면 이 체한 느낌이 조금은 사라질까 싶어서. 치즈가 올라간 곱창은 먹어본 적 없다는 동생을 위해 치즈 곱창으로 시켰다. 맥주도 꺼냈다.


결국 치즈는 내가 거의 다 먹었다. 저절로 쓰읍 거리게 되는 매운맛과 쫄깃하고 고소한 식감의 치즈가 만나 입 안에 꽤 오래 머물렀다. 흐물거리는 당면과 점점 굳어가는 치즈와 함께 맥주도 중간중간 마셨다. 꿈을 위해 묻혀 있던 사람들이 세상에 나와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도 봤다. 합격할 것 같다, 목소리가 좋다 이런 이야기도 나누고. 조금씩 얹힌 속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30일의 할당량을 다 채웠다. 이제 몇 분 후면 달을 새로 갈아 끼우고, 그 안을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맥주를 한 캔 다 비우고, 새로운 캔을 꺼내온다. 바깥의 차가움이 내게로 옮겨 붙은 것 같다. 이 차가움이 손에 붙어 미지근해지는 것처럼, 내일의 새로움도 나는 결국에 적응해내겠지. 소화제처럼 남은 곱창을 꼭꼭 씹어내며, 맥주를 다시 넘기고, 지금처럼, 내일을 또, 소화해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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