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간식_크로크 무슈 토스트
2020년 12월 3일, 오후 2시 58분
일어나자마자 복권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분으로 일어난 게 오랜만이라서, 이 기분을 기념하고 싶었다. 택시 타고 출근한 건 똑같지만, 적어도 나가기 싫어하진 않았다.
오늘은 수능날. 가르쳤던 아이에게 따뜻한 음료와 간단한 메시지를 보냈다. 날이 추우니 손 녹이고, 오지선다로 정답을 판가름하는 문제가 너 자체를 판단하진 않는다고. 너는 너무 소중하고, 수고했다고. 나 역시 경험해본 긴장감, 그리고 옆에서 봐온 일 년 간의 수고. 끝났을 때 나처럼 허망함을 느낄 수도, 혹은 아쉬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한 순간만이라도 편안하길 바라는 소망을 문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았다.
수능날 나는 어땠었지. 꽤 오랜 시간을 더듬어 올라간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바람에 긴장을 많이 했고, 수능이 끝나고서는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체념을 부르며 채점했었다. 늦게 집에 들어가는데도 핸드폰이 내내 조용했다. 내가 아쉬운 수능 결과에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던 건 수능이 끝난 직후 내가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충분히 놓아준 그 시간 덕분이다.
출근하니 책상 위에 따끈하게 데워진 크로크 무슈 토스트와 분홍색 머리끈과 팔찌 그사이의 물건이 올려져 있었다. 채 앉기도 전에 어지럽고 산만하게 나뒹구는 종이 더미에 올라탄 선물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역시 오늘은 복권을 사야겠다, 다시 생각했다.
분홍색 팔찌 겸 머리끈은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제 팔에 걸린 다른 색, 똑같은 디자인을 보여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자랑할 때 들뜬 목소리와 나를 생각해 하나하나 엮었을 모습이 사랑스러워 온갖 주접을 다 떨었다. 지금도 오른팔에 끼워 넣었다.
크로크 무슈 토스트는 새 원장님의 선물이었다. 혹시나 출출할까 봐 둔 것이라고. 퇴근할 때까지도 바빠서 먹지 못한 채 책상 위에 놓인 토스트를 보고 말씀해주셨다. 결국 집에 와서 뜯었다. 다시 데운 빵은 조금 흐물거리고 피자빵과 비슷한 맛이 났다. 중간중간 씹히는 옥수수알이 터지며 내는 은은한 단 맛, 치즈의 느끼하고 고소한 맛 같은 것이 부드럽게 섞인다.
작은 선물들로 하루가 힘났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오늘 하루는 곧 365일을 이루는 작은 점이 되겠지.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순간도, 당장 기뻐 날뛸 것 같은 순간도, 결국은 삶을 이루는 작은 점들. 밤하늘에 숨어있는 별들처럼 기억 어느 한 틈에 숨어있다가 나중에 튀어나오게 될 그런 점들.
수능을 보고 나와서 느꼈던 그 허망함이 몇 년 후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만 남은 것처럼, 어제의 나빴던 기분이 오늘은 잊히고 좋은 기분만 남은 것처럼. 모든 순간들이 점이 되고, 나중에 꺼내보면 다른 의미가 되니까. 그저 지금이 나중의 금 같은 점이 되길 바랄 뿐. 타자를 치는 손에 달랑이는 분홍빛을 보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