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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작은 웃음의 조각

오늘의 간식_미니 초코바

by 여느진

2020년 12월 2일, 오후 10시 14분

조금 일찍 눈을 떴지만 일어나기 싫었다. 밥도 먹어야 하고, 영양제도 먹어야 하고, 자료도 더 확인해야 하고, 일어나서 해치워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데. 일어나서 밥을 먹으면 영양제를 먹어야 하고 먹고 나면 자료를 확인해야 하고 그러고 나면 출근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 어제처럼 바나나 하나와 커피 한 잔만 마시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기념품을 샀다. 소비를 하면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시발은 시발인 채로 남았다.

바뀌고 보내는 첫날, 생각보다 일과는 부드럽게 지나갔다. 체념과 순응이 더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최악은 아니었다. 여전히 기분은 나빴지만.

하루가 끝나가는 순간, 배가 고팠다. 낮에 먹은 것이 부실하니 어쩌면 예견된 허기짐. 아직 채 갈무리되지 않은 일 속, 일하다가 한 아이에게 받은 초코바를 꺼내먹었다. 아주 작지만 당장 우는 배의 입을 막기엔 효과적이었다. 이따 야식으로 뭐 먹지 고민할 수 있게 해 줬다. 이런 작은 여유 있는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이리 흑화 했냐는 낮에 동생이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웃음의 순간은 생각보다 단순하구나. 초코바를 먹다 헛기침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사회에 섞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웃음을 지은 일이 처음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너무 큰 짐덩이를 끌어안아서 이런 작은 웃음의 조각들을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걸까. 조각이 으스러져 생긴 가루는 그냥 흩어진 걸까. 내가 칠한 어두움이 조금만 더 반짝이면 좋을 텐데.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별을 괜히 손으로 가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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