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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맛있는 기다림

오늘의 한 끼_돼지고기 김치찌개와 갈치구이

by 여느진

2020년 12월 6일, 오후 9시 37분


일어나자마자 유산균을 챙겨 먹고,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기다렸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가족들과 무대를 보게 됐고, 어떡해! 하는 비명 섞인 감탄을 내뱉으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동생은 내 소리가 이웃주민에게 피해가 될지도 모른다며 창문을 닫아버렸다. 잔뜩 지친 나를 이만큼 활력 넘치게 만들어주는 건 역시 애정이다.


저녁도 비슷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늘은 시상식이 있었고, 장장 5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무대를 기다리며 저녁을 먹었고, 중간중간 상을 받을 때마다 소리를 질러 동생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평소 관심이 있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라 다른 아티스트들의 무대나 노래를 잘 몰랐는데, 시상식을 통해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아이돌을 좋아한 때가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말은 이런 시상식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기다리는 재미를 즐겨왔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티브이 화면 뒤로 퍼지는 건 맛있는 냄새. 얼큰하고 익숙한 김치찌개 냄새에 이어 조기를 굽는 냄새. 저녁이 익어가는 냄새와 화려함의 조화. 어쩐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좋아했던 가수들과 그때의 분위기가 순간 머릿속을 스쳐갔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식사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무대를 시작했다. 평소보다 많은 밥에 동생이 만들어 낸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터트려 비비고, 그 위에 얼큰한 김치찌개의 고기와 국물을 올려 먹었다. 짭조름하고 매콤함이 섞여 술술 들어갔다. 동생과 엄마가 내 밥그릇에 쌓아놓는 갈치구이의 살점도 같이 넘겼다. 언제 나올까라는 기대감과 맛있는 저녁이 섞여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를 보고 나니 하루가 다 사라졌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싶어 자처해 쌓여있는 일거리들이 남았다. 결국 내 눈 앞에서 화려하게 반짝이던 화면도, 입 안을 자극하던 맵고 짠맛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2020년의 내 하루를 채워주고 떠난 것들.


추억과 반짝임 속에서 앞으로 남은 연말 무대들을 기대한다. 다시 커피를 타 와 노트북 앞에 자리 잡은 지금, 한 편에는 방금 전까지 봤던 무대의 다시 보기 영상을 틀어놨다. 오늘도 내년의 내가 추억할 그런 날이 되겠지. 기분 좋은 기다림으로 채워진 오늘, 이제 내일이 되면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뀌겠지만, 그래도. 오늘의 기다림은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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