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카레와 맥주
2020년 12월 5일, 오후 11시 5분
드디어 카레를 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어오면 망설임 없이 카레를 답할 수 있는 내게, 지난 몇 개월은 꽤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강제로 못하게 되는 것과 자유의지로 안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교정으로 인해 카레를 금지당한 시간들, 어차피 마스크 끼니까라는 합리화와 월 진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명분은 금기를 어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금기를 깨는 일은 언제나 가슴 떨리고 즐겁다.
사실 카레를 먹기까지 마찰이 있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요즘의 나는 예민함의 농도가 너무 짙고, 이 짙은 예민함이 주변인들까지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예민함을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요즘처럼 예민함이 짜증과 만나면 말이 달라진다. 짜증 섞인 예민함이 주변에 퍼지면 갈등의 촉발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바탕 쏟아내고 미안하다 말하면 대부분 이해해주지만, 그렇다고 내가 쏟아낸 감정이 그들을 불쾌하게 적신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물기가 다 말라도 얼룩은 남을 테니까.
카레를 먹고 나면 주변도, 입도 모두 그 향과 색으로 물든다. 어쩌면 난 이 존재감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짙은 농도가 물들인 주변은 대게 만족이 따라오니까.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 없이 카레향, 카레맛. 그의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납득되니까.
나의 감정을, 나의 상태를, 나를 끊임없이 알리고 설명하는 일에 이골이 난 것 같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내 일이지만, 주제가 나일 때는 난도가 지나치게 높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일. 내 이름 석자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카레 같은 색과 향이 있으면 좋겠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맥주와 함께 먹는 카레는 일하기 전에 먹었던 카레와 조금 다르다. 조금 더 농도가 짙어졌고, 조금 더 맛이 강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카레. 그 두 음절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입안에 남은 카레향을 맥주로 씻어내도 결론은 카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자가 잔뜩 들어간 노란 카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인다.
카레는 카레. 나는 나. 내일은 휴일.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고 푹 쉬고 싶은 그런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