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포테이토 피자
2020년 9월 12일, 오후 4시 58분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잡스런 옛 기억이 갑자기 물밀듯 파고들어와 일어난 후에도 기분이 뒤숭숭했다. 이런 내 기분을 반영하듯 빗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장식했다.
마음 같아선 이불에 폭 싸인 채 하루 종일 이 우울한 무력감과 비가 만들어낸 회색빛 하루의 포근함을 즐기고 싶었지만, 해야 할 일들이 몸을 일으켰다. 귀 염증의 마지막 치료를 마치고, 조금 오래 걸린 치과 월 진료를 마치고, 큰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귀엽고 싼 물건들을 충동구매하고.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파는 커피를 호기심에 사들고 집에 왔다. 주말이 되면 버리겠다 다짐한 가구를 두 점이나 낑낑대며 버리고 오기도 했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 위로 달라붙는 물방울들과 함께 알찬 하루 일정을 보냈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찝찝한 느낌.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파전이 생각난다. 소리도 소리지만, 빗물에 진탕 된 하루를 반죽 안에 섞어 넣을 수 있으니까. 기름에 튀기듯 구워 막걸리와 먹으면 맛있는 위로가 되어 맑은 날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오늘은 좀 더 톡톡 튀는, 밝은 전을 먹고 싶었다. 시간이 아직 이르기도 했고, 내게 파전은 자주 가는 막걸릿집 특유의 습하고 더 무거운 느낌이라서. 그래서 서양 감자전을 주문했다. 정작 오븐 스파게티와 핫윙, 마약 옥수수 같은 따라온 주변 음식을 더 많이 집어먹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감자와 베이컨, 치즈와 마요네즈 등 많은 재료들이 내 복잡한 머릿속과 뒤섞여 입 안에서 사라져 갔다.
복잡한 생각이 토핑으로 올라간 늦은 점심이자 이른 저녁. 다시 비는 그쳤고, 배가 부르고, 나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