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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r 26. 2021

STOP, 버스 하차 벨

오늘의눈 맞춤

2021년 3월 25일, 오후 9시 34분


 퇴근하는 버스 안, 마음이 이상하다. 맨 뒤의 구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데 여러 감정이 섞여서 치밀어 올랐다.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감정도 수레바퀴가 있다고 믿는다. 가장 꼭대기 위에 올라탄 감정은 언젠가는 내려오게 되어있고, 가장 밑바닥에 숨죽이고 있는 감정도 언젠가는 올라가게 되어있다. 오늘 내 감정은 그 수레바퀴를 여러 차례 굴렀다.


 출근하는 택시 안, 날씨가 너무 좋아 기분이 나빴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고, 햇살이 부드럽게 내 손등과 머리칼을 어루만지고 갔지만 그 따스함이 불쾌한 이유는 일터로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막상 도착했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보다 반쯤 높은 목소리를 지닌 채 일을 했고, 화를 냈고, 웃었고, 울적했다. 감정이란 제 모습을 얼마나 쉽게 바꾸는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웠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번쩍이는 붉은빛이 자꾸 눈에 밟혔다. 어쩌면 그 위에 새겨진 문구 때문일지도. 


 STOP.


 멀미날 것처럼 일렁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리고 싶었다. 퇴근길에 내가 타고 있던 버스에는 나 말고 다른 이들이 지닌 감정도 함께 타고 있었다. 저마다의 화면과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속에는 다 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겠지. 그들이 빨간 불을 밝힐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문득 궁금하다.


 나는 사실 오늘 버스를 내리는 순간에 순두부찌개를 시켜먹을까 포장해갈까 고민했다. 결국은 포장했고 맥주도 샀다. 내일도 비슷한 시간에 버스를 내릴 텐데. 그때 나는 어떤 고민과 감정을 품고서 빨간 불을 밝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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