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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r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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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눈감기

2021년 3월 30일


 하루가 짧은 듯 길다. 깊게 잠들지 못해 지나치게 이르게 눈을 뜨고, 지나치게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벽에 내가 만들어내는 많은 문장들은 사실 잠들지 못한 생각들을 잠자리로 보내기 위한 노력의 잔해다.


 하루에 하나쯤은 눈에 오래도록 남는다. 오늘은 모든 게 그랬다. 택시를 타기 직전 보였던 만개한 벚꽃의 흩날림, 택시기사님의 어플 사용 미숙으로 길가에 멈춰서 있을 때 보이던 뿌옇고 흐린 하늘, 구조가 바뀐 일터의 모습, 오늘 마주한 이들의 복잡한 여러 표정들. 이런 날에 내가 택하는 건 눈감기다. 모든 걸 한 곳으로 묻어버린다.


 나는 곳곳에 내 마음을 문장으로 새겨둔다. 그리고 훗날 그 흔적을 나중에 발견했을 때 대게 감정의 동기화가 일어난다. 새벽에 내가 그랬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갑작스러운 날 것의 감정들은 날 체하게 했다. 체기가 가시지 않은 채로 하루를 보냈다. 역시 운동을 하지 않아 소화기능도 마비가 된 걸까. 실없는 생각도 했다.


 눈 감은 내 모습을 당연하게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냥 이렇지 않을까 추측할 뿐. 누군가가 나를 담아낸 사진 속 자는 나든, 잘 나오기 위해 눈을 감은 나든 언제나 낯설다. 자신이 보지 못할 표정을 내게 펼치던 사람들의 모습이 왜 떠오르는지. 그들도 내가 보지 못한 내 모습을 봤을 때 이런 울렁거림을 느꼈을까.


 다시 눈을 감는다. 오늘 본 것들과 울렁거림이 그냥 한 곳에 묻혔으면 좋겠다. 다시 눈 떴을 때는 눈 맞춤이 길도록 이어질 만큼, 속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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