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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05. 2021

노을이 머무는 자리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5일, 오후 6시 30분


 잠옷이 조금 갑갑하게 느껴진 월요일. 일주일 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이 못내 신기하다. 이런 순간이 얼마만이지. 나른함과 갑갑함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거울 속 내 모습. 좋아하는 품 넓은 바지와 선물 받은 운동화를 신고 나오자마자 나를 반긴 건 노을이 깃든 거리.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잊고 살아온 평일 저녁의 시간이 어떤 빛이었는지 깨닫고 나니 뭔지 모를 벅참과 여러 감정이 밀려온 탓이었다. 한참을 멈춰서 발을 떼지 못했다. 


 오늘의 산책길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옆 동네에 동네 주민들의 벚꽃 명소 같은 공원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하늘이 뱉어낸 노을빛을 머금은 벚꽃들. 천천히 내가 놓쳤던 시간의 하늘과 풍경을 담았다. 파란색, 주황색, 하얀색, 분홍색. 여러 색이 섞인 하늘을. 이번 봄의 평일 저녁은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놓치는 시간 보다, 잡아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했다. 


 바람이 차가웠다. 벚꽃이 흩날렸다. 곧 만개한 꽃도 지겠지.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 듬성듬성 난노란 민들레, 밝혀 꺾여있는 꽃 몇 송이.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바위틈에 낀 붉은 꽃의 존재를 알아낸 것도 결국은 내 눈이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져서니까. 앞으로 담길 것들이 더 많다. 그거면 됐다.


 노을이 머무는 자리, 노을이 머물고 간 자리, 노을이 머물고 갈 자리. 이만큼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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