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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05. 2021

미룸의 조각

오늘의눈 맞춤

2021년 4월 4일, 오후 5시 14분


 헉 소리와 뜬 눈. 이미 날은 밝은지 한참이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퇴사 후에도 바쁜 건 내가 벌린 일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미루고 미룬 과거의 내가 만든 업보일까.


 식사를 뒤로 미루고, 중간중간 게임도 확인하고, 노트북 앞에 쭈그리고 앉아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낸다. 주말이 평일 같고 평일이 주말 같아진 며칠. 앞으로도 당분간 이러겠지. 아직도 마음은 전 직장에 발 묶여 있지만, 한 걸음씩 벗어나려 애쓰는 중이다.


 결국 저녁에 가까운 시간에서야 무얼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생각나던 피자를 시켰다. 노트북 앞에 차려놓고 또 한참을 할 일로 채우느라 방치했다. 저녁보단 밤이 어울리는 시간이 되어서야 2조각 남짓 비워냈다. 일하는 내내, 핸드폰을 보는 내내, 눈의 구석에 계속 거슬렸던 오늘의 첫끼이자 마지막 끼니의 메뉴. 나를 챙겨야지 하고 미루는 습관처럼 구석에서 빚처럼 나를 짓누른다. 오늘 난 또 나를 미뤘다.


 오늘 하루를 반추하는 새벽시간. 먹다 남은 피자를 하나 데워와 노트북 앞에 또다시 앉는다. 이렇게 미뤄진 조각들을 하나씩 천천히 먹어치우다 보면, 그러면 조금 더 깨끗해질까. 더 나아질까. 눈뜨면 조금 더 일찍 밥을 먹어야지. 할 일을 조금 더 일찍 해치워야지.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다시 한번 나와 약속하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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