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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07. 2021

하늘은 사각형

오늘의눈 맞춤

2021년 4월 7일, 오전 11시 16분


 잠든 건 새벽 한가운데, 눈뜬 건 조금 이른 오전. 평소보다 빠르게 하루를 열었다. 아마 전 날 마신 맥주 두 캔의 여파인 듯했다. 눈을 감고 더 잘까 싶다가 그냥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 지 두 시간쯤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상큼한 과일이 먹고 싶었고, 달달한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하고 싶다'가 '~했다'로 바뀌기 위해선 약간의 귀찮음이 필요한 법이다. 햇빛은 뜨거운데 바람은 차가웠다. 직장인과 백수 그 사이에 걸쳐있는 나의 존재 같은 봄과 가시지 못한 겨울이 섞여 있는 날씨.


 포도만 사려다 떨이 중인 딸기도 샀다. 평소에 자주 가던 카페가 아닌 다른 카페에서 새로운 커피를 사봤다. 집에 도착하기 전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봤고, 새파랬다. 문득 하늘은 사각형 같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건 네모난 사진 속에 갇힌 모습이니까. 각진 건물들에 제 살을 깎인 하늘은 정말 사각형이 아닐까 싶었다. 머리칼을 마구잡이로 흩뜨리는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보면서 짧은 상념에 잠길 수 있는 것도 애매한 나의 입장 때문에 생긴 작은 여유. 나쁘지 않은 오늘의 수확.


 집에 도착해서 입에 밀어 넣은 딸기는 조금 맛없었고 커피는 앞으로 종종 찾을 것 같은 맛이었다. 실패와 성공을 같이 얻었다. 이역시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내일은 하늘을 보고 다른 도형을 떠올릴까. 또 어떤 작은 것들을 얻을까. 조금 기대되는 나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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