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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10. 2021

기억의 자리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10일, 오후 7시 52분


 시간이 갉아먹는 건 길거리 입간판이나 날카로운 물건의 모서리만이 아니다. 기억을 다듬어 놓기도 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 내 모습이 조금 흐릿하다. 여느 청소년이 다 비슷하겠지만 나이 앞자리의 1은 한없이 가볍고, 뒷자리의 숫자가 한없이 무거워 불균형하게 흔들리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시기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과 남이 기억하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오늘 10살보단 20살에 가까운 때 처음 알게 되어, 20살보단 30살에 가까워질 때까지 인연을 이어온 친구랑 만났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냈고 어쩌다 대학도 같은 곳으로 간 친구.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제법 어른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다 내 기억과 조금 다른 나를 찾았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는 계속 품고 있던 못되고 뾰족한 나도 발견했다. 


 그 순간을 잡아두지 않으면 결국 시간은 흘러가버리는구나. 흘러가며 지나가는 기억의 자리를 침식시키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카페 계단에 숨겨진 고양이를 발견했다. 주의 깊게 보지 않았으면 지나왔음에도 내 기억에 자리잡지 못했을 고양이를.


 오늘도 지나가겠지. 그래도 일부는 자리잡지 않을까. 글로 채 담아내지 못한 자괴감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흘러가고, 내 책을 건네줄 때와 계단 위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행복감만 남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또 갉아먹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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