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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13. 2021

빗물 속 나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12일, 오후 4시 34분


 눈이 묵직했다. 귓가에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예상은 했지만 쉽지 않은 하루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씻으며 오늘의 계획을 살짝 바꿨다.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지만 지킨 적은 없다. 계획을 다 지킨 적은 몇 없다. 그냥 내 하루에 뭐가 일어날까 예측하는 과정을 즐긴다. 오늘 같은 변수는 내가 예측하지 못한 틈을 파고들고, 그러면 난 그에 맞게 움직이면 된다.


 비가 오는 날은 집에만 있고 싶지만,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투명한 우산을 들고 물방울 맺힌 풍경을 우산 너머로 바라보며 오가는 길.  비 오는 날은 바닥이 거울이 된다. 바닥에 비친 나와 인사하며 집에 갔다. 실제 거울에 비치는 나보다 좀 더 흐리고, 뭉개지고, 유연하고, 언제 말라 사라져 버릴지 모르는 아슬함이 고스란히 담긴 또 다른 나.


 정확히는 가려고 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대형마트를 발견해 홀린 듯 들어가 묵직한 짐을 들고 나왔다. 이후부터는 아까의 여유가 사라지고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도착해서는 짐 정리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누웠더니 하루가 사라졌다.


 여전히 빗소리가 들리는 새벽. 내일도 나는 빗물 속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어쩐지 거울 말고 빗물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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