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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14. 2021

갇힌 나비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13일


 오늘따라 자꾸 눕고 싶고, 누우면 눈이 감기고 잠이 쏟아졌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다. 밥도 대충 챙겨 먹고,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은 자연스럽게 내일로 미뤄졌다. 애초에 나와의 약속이었으니 대가는 오롯이 내일의 내가 감당해야 한다. 벌써 후회로 점철된 내일이 보인다.


 이렇다 보니 오늘 내가 가장 많이 눈길을 준 건 핸드폰. 사실 매일이 그렇지만 그럼에도 오늘 내가 가장 눈을 많이 맞추었다고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핸드폰뿐이다. 정확하게는 배터리 충전을 잊어 점멸한 화면에 비친 나와, 이불 위에 엎어놓고 잠들었다가 어슴푸레 일어나 보게 된 핸드폰의 뒷면.


 내 핸드폰 뒷면에는 나비가 산다. 빛을 받으면 여러 가지 빛깔로 반짝이는 나비가. 추가로 붙여둔 스티커들은 덤이다.


 사실 요즘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 안에 생각이 너무 많아 무겁다. 족쇄 같은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 핸드폰에 갇혀있는 나비들도 마찬가지겠지. 날아가지 못하고 핸드폰 뒷면에 갇혀 빛나는 모습들이 어쩐지 조금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도 눈이 무겁다. 마음도 무겁다.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는데, 역시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야겠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마음도, 눈도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라면도 끓여먹어야지. 대파도 사 오고 볶음밥도 해 먹어야지. 다른 것을 더 눈에 담아야지. 그리고 나비를 조금 덜 봐야지. 내 눈길에서 벗어나 그들이 좀 더 자유롭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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