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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Apr 28. 2021

장작 같은하늘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4월 27일, 오후 9시 13분


 오늘은 친한 동생의 생일. 나는 내 생일 당일에 약속 잡는 걸 꺼려하는 편이다. 우선 난 내 생일을 엄청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대게 가족들이랑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애초에 엄청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나에게 생일 당일에 누군가와 함께라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이 의미 있다는 것이라, 이 사람의 생일을 함께 보낼 수 있음이 참 좋았다.


 사실 만나기 직전까지 일진이 안 좋았다. 시작은 생각해둔 옷이 막상 입어보니 영 아니라 다시 허겁지겁 골라야 했다. 주문 제작한 케이크를 찾고 나서 지하철을 타러 가다가 지갑이 사라진 것을 알았고, 늦을 것 같다 양해를 구한 후 가게와 집을 돌아봤는데도 지갑은 없었다. 급하게 있는 현금과 좋아하는 연예인의 엠디인 교통카드를 챙겨 나왔다. 신호등을 건너다가 누군가 익숙한 열쇠고리가 달린 것을 들고 있는 모습을 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뛰어가서 제거예요! 하고 외치고 찾았다. 새로 달아둔 다른 열쇠고리는 떨어져 사라져 있었다. 지갑을 찾은 데다가, 마침 동생도 늦는 상황이라 다행이었지만 몹시 더웠고, 힘들었다.


 그리고 근교 바다에 도착한 순간부터 앞서 말한 모든 일들은 일종의 극적인 연출에 불과해졌다. 흐릿한 안갯속 바다는 어쩐지 오묘했고, 바다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온갖 것들을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생일을 이유로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눠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동생에게도 고마웠다.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정말 많았는데, 다행히 좋아해 줬다. 케이크도 뭉개지지 않았다. 조개구이도 맛있었다. 사진도 잔뜩 찍었다. 그냥, 정말 좋았다. 어제 구입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처음 써봤다. 함께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것을 그 자리에서 뽑아 선물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계속해서 편안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돌아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바다를 거닐었다. 물은 다 빠졌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폴라로이드로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고, 소리와 바람만으로 바다 그 자체를 즐겼다. 제일 마음에 남아 계속 본 하늘.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노을 같은 하늘이었다. 꼭 타오르는 장작 같은 하늘. 화질이 떨어지는 카메라로 찍어내 생긴 노이즈도, 빛 번짐도 모두 하나의 낭만. 지나간 시간을 다 태우고 새까만 잿 덩이로 돌아가는 중인듯한 하늘이 자꾸 눈에 맴돌아 계속 눈길이 갔다. 나빴던 시간도, 좋은 시간도 결국은 하나의 잿더미. 그리고 결국은 좋은 것만 머리에 남는.


 다 타지 못하고 붉은빛으로 남아있는 것조차 결국은 아름다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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