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11일
내일 해야지,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미루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눈 뜨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도 자리 잡고 있어서.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초조하지도 않다. 어떻게든 해낼 나를 알고 있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도착했다. 뜯고 어떤 포토카드가 들어있는지, 앨범 구성은 어떤지 확인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뜯는 과정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짧게 영상을 편집하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올해가 시작될 때 세웠던 계획 중 일상 영상을 편집해보고 싶다는 게 있었는데, 어찌 보면 이룬 셈이다.
앨범을 뜯고도 바빴다. 커피를 3잔 정도 비우고 컴백쇼를 볼 준비를 했다. 내가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르고 난리법석을 피워대는 동안 뒤에서 동생은 묵묵히 저녁 식사를 했다. 다 끝나고도 다시 봤다. 마음이 벅찬 느낌이었다. 내가 무대를 한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아주 오랜만에 티브이를 오랫동안 봤다. 앨범을 뜯는 중에도 티브이로 뮤직비디오를 틀어놨었고, 컴백쇼도 더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서 티브이로 봤다. 매일 손바닥만 한 휴대폰 화면을 달고 살다가 갑자기 커다란 영상을 눈에 담아내니 기분이 이상했다. 무대 하는 영상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더 와 닿는 그런 느낌.
무대가 모두 끝나고, 마지막 장면을 보는데 문득 내가 보고 있는 건 누군가가 빛나는 순간이겠구나 싶었다. 티브이로 상영되는 드라마도, 내가 그냥 넘기는 광고도, 틀어두고서 신경도 안 쓰고 다른 행동을 하곤 하는 개봉 한 지 오래 지난 영화도. 예능 프로그램들도 전부 다. 그들의 빛을 아무 수고 없이 볼 수 있다니. 새삼 고맙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순간이 티브이에 나오고, 누군가 바라보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결국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건 나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어떨지 궁금해지는 그런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