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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느진 May 13. 2021

라테의 잔여물

오늘의 눈 맞춤

2021년 5월 12일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굴러가지 못하는 나. 카페인 유무에 상관없이, 컵에 얼음을 잔뜩 넣고 그날 기분이 당기는 대로 물이나 우유 중 골라 커피 원액과 섞은 후에 시럽을 휘휘 둘러 다회용 빨대로 달그락달그락 저어야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시럽이 뚝 떨어졌다. 하필 원액도 그냥 마시기엔 조금 떫어서 우유만 잔뜩 넣었다. 그래도 맛없어서 설탕이라도 넣었다. 반쯤 마시고 한참을 방치됐다가 엄마가 퇴근하며 수박주스를 사 왔을 땐 잠시 어디에 뒀는지조차 까먹었다.


 알게 된 건 바닥에 앉아 있는데 뭔가 옷이 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였다. 올려둔 테이블 위며 바닥이며, 매트리스며 난리가 아니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닦아냈다. 동생은 닦으며 오늘 좀 험난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나마 시럽을 넣지 않아 덜 끈적거려 다행이었다.


 잊힌 라테의 복수였던 걸까. 오늘까지 마감이었던 과제도 어영부영 허겁지겁 끝내야 했고, 야식으로 야심 차게 시킨 치킨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해결되지 못하고 남은 잔여물은 가끔 이렇게 말썽을 부린다. 수습은 잊고 있던 현재의 내가 해야 하고. 오늘 남긴 것들이 더 있던가.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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