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끼_감자 수제비
2020년 9월 20일, 오후 10시 22분
새벽을 잔뜩 즐기고 아침에서야 잤더니 어제와는 정반대로 아주 늦은 시간에 눈을 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한 마음 없이 편안하게 눈뜰 수 있는 건 주말의 특권. 조금 진하게 타진 달고나 라테를 마시다가, 이북리더기로 읽던 책을 읽다가, 새벽에 발견한 새로운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마음껏 여유를 즐겼다. 잠시 후 들어올 주방의 새손님을 기다리면서.
원래 쓰던 냉장고가 고장 나 오래도록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다가, 드디어 새로운 냉장고를 들여왔다. 불편함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조금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게 기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들뜨고 신나는 일이었다. 새 냉장고 안에 넣을 간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건 더 즐거웠다.
엄마는 새로운 냉장고가 들어오면 수제비를 해주겠노라 말했다. 그간의 불편함을 밀가루 반죽에 섞어 치대고, 내가 좋아하는 퍼석한 식감을 자랑하는 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새로 들어온 냉장고의 환영식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아주 늦은 저녁 겸 야식으로 이 환영식이 진행됐다.
요즘같이 바람이 냉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때에 어울리는 뜨끈하고 감칠맛 도는 맑은 국물. 입에 넣으면 뜨거워 잘 씹지 못하지만 금방 푸스스 부서져버리는 푹 익은 감자조각. 조금은 흐물흐물한 애호박과 양파.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두꺼워 약간 쫄깃한 식감을 내는 밀가루 반죽. 이 모두가 입 안에서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환영식이 워낙 즐거웠기 때문에 모두가 아쉬워했다. 그래서 입 짧은 내가 한 그릇 더! 를 외쳤다. 파티가 조금 더 지속됐고, 모두가 지쳐 내 뱃속으로 먼저 자러 갔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을 넣으며 야밤의 환영식을 마쳤다. 앞으로 이 냉장고는 내게 또 어떤 한 끼를 가져다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