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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느 한끼

차가움에 익숙해지기

오늘의 한 끼_베이컨 포테이토 롤과 흑임자 라테

by 여느진

2020년 10월 13일, 오후 8시 7분

바쁜 일상의 신호탄이 터졌다. 바빠지기 시작하면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출근 전 식사다. 조금이라도 더 자길 선택하거나 일찍 일어나도 일을 미리 하기를 택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제의 속 쓰린 교훈으로 청포도 몇 알과 우유 한 팩으로 대강 때우고 영양제를 밀어 넣었다. 대충 버틸 수 있을 정도로만 나를 채우고 부쩍 추워진 길을 서둘러 떠나는 내 모습 사이로 노래를 끼워 넣는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바쁜 하루를 어찌어찌 버텨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다 보니 배고픔을 해결하고 싶은 욕구도 같이 억압된다. 이럴 때는 간단한 샌드위치나 라테 같은 것이 당긴다.

오늘은 핼러윈데이를 겨냥한 듯 마녀 모자 모양 초콜릿이 올라간 흑임자 라테와 부리또 같은 베이컨 포테이토 롤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뜨끈한 온도의 음료는 익숙한 고소함을 전달한다. 위에 올린 말차 맛 휘핑크림과 초콜릿은 뜨거움에 금방 녹아 사라졌다. 말차의 씁쓰름한 맛을 약간 기대했는데 남은 건 설탕을 넣은 우유 같은 달콤함이다.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로 오늘도 새벽녘에야 잠들 나를 위한 안정제 같은 맛. 감자의 포슬함과 치즈, 베이컨의 짠맛이 한 번에 밀려오는 롤을 몇 조각 먹고, 점점 미지근해져 가는 라테를 마시며 오늘의 첫 한 끼를 때운다. 결국 식어 딱딱해져 버린 롤을 두어 조각 남긴 채로.

분명 따뜻한 음식을 먹었지만 쌀쌀함이 가시질 않는다. 갈수록 마주치는 하루하루의 온도가 낮아진다. 손발의 온도가 유달리 낮은 내가 버티기엔 현실의 차가움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무엇이 날 데워줄 수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을 집어 들었다. 새로운 맥주를 마셔볼까 한참을 고심하다 결국 늘 마시던 것으로. 손에 들러붙는 차가운 캔에 순간 정신이 확 깬다. 차차 익숙해져 무감해졌을 무렵 가방에 넣는다. 따뜻함은 결국 그 온기를 잃기 마련이지. 차가움이 결국 그 냉기를 잃는 것처럼.

오늘 내가 잃은 온기만큼 차가움에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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