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나한텐 아무도 없어
아... 언니 제발....
어젯밤을 새워서 신경이 날카로운데 핸드폰이 울렸다. 영락없이 언니다. 울고 있다. 울면서 전화했다. 에구 지금 몇 시야. 오전 9시였다.
그래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지. 뭐 언니와 나 사이에 전화 시간 같은 게 있기나 했나. 그래도 끝없이 되풀이되는 같은 말에 나도 지친다. 그러면서 언니는 참 체력도 좋다 싶다.
나는 이것저것 원고에 업무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혈육의 마음이 아프다고 하니 저러다 덜컥 병원에 입원에라도 하면 그 또한 내 차지가 되니 그래서 나는 언니를 이해해줘야 한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다. 그 형부라는 그 남자라는 사람은 어떤 뇌구조인지도.
넌 그에게 왕관을 씌워 준거야. 계속 멋대로 굴라고. 계속 늦으라고. 지각을 해도 무례해도 다 괜찮다. 사람을 떄려도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왕관!
그런 식으로 일하지 마.
너는 선배말고도 옆에 많이 있잖아. 나는 선배밖에 없어. 나한테는 아무도 없어.
상연은 일을 해결하는데 만 급급해서 과정에 있는 구석구석은 살피지 못한다. 살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은중은 사람들의 마음을 살핀다. 어떤 일이든 누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이면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일이 자신의 마음을 다치든 남의 마음을 다치든. 그 마음을 똑바로 본다.
우리는 마음을 똑바로 보면서 사나.
나는 요즘 내 마음은 그냥 투명한 색이다. 미용실을 언제 갔는지 모르는 헤어스타일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도 가을 카디건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은 아랑곳없이 티셔츠에 청바지, 낡은 카디건을 필수 아이템으로 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문득 하늘 보면서 숨만 쉰다. 그래도 괴롭지 않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내게 전화하지 않아도, 누가 내게 관심 주지 않아도. 나는 괴롭지 않고 나의 하루 일정을 체크하면서 재미있게 내 일을 해 나간다. 이러면 된 거 아닌가. 이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나의 불쌍하신 언니님은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괴로울 때인 것 같다. 나는 언니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진짜 괜찮냐고 했다. 언니는 나한테 잘해줘라면서 결혼 준비에 행복해했다. 33년을 산 언니가 갑자기 이혼해야겠다고 했을 때 제정신이냐고 했다. 이혼하면 뭐 먹고 살 거냐고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으면서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언니는 지금 이혼 안 하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아닌 생판 남인 여자 두 명, 무속인 여자와 내연녀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초점 없이 힘없이 말했다.
그렇게 결심했으면 이혼 준비를 하면 되지. 왜 우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 겹겹이 복잡하게 층위가 나뉘어 있는 언니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고자 한다. 제발 언니가 냉철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형부는 무속인이 소개해 준 여자를 만난 지 7일 만에 그 여자에게 1억 2천만 원을 빌려줬다고 했다. 이것도 언니가 변호사를 통해서 정리하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몇 년 동안 꽁꽁 숨기고 있다가 언니는 왜 이제야 내어놓고 왜 지금 이혼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언니와 나의 엄마와 언니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들 때문이었으리라. 아들들이 대학 졸업반과 취업 준비였을 때였나 중요한 자격증 시험이 둘 다 있었고 엄마가 중환자실에 계셨고 그래서 그걸 다 꽁 싸매고 있다가 터뜨린다, 지금. 언니는 그랬다. 어릴 때도 늘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안 해서 우리 모두는 언니는 원래 아무 말도 없고 다 그저 밥만 주면 다 좋은 그런 사람인줄 만 알았다. 그런 순진한 면이 형부라는 탐욕스럽고 교활한 남자의 목표물이 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