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선생님. 굿모닝, 뉴질랜드

13년 동안의 교사의 삶을 정리하고, 우리나라를 떠나 뉴질랜드로 왔다.

by 리엘리


2017년 2월 15일, 투명하게 맑고 코끝이 찡하게 추운 겨울날이었다. H고등학교의 새로 단장한 강당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H고등학교는 내게 여러모로 매우 특별하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2월에 나도 이 장소에서 졸업을 하고,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돌아보니 순간의 세월 같기만 한데, 벌써 열여덟 해가 지났다. 이날의 주인공도 내가 아니라 내가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졸업식 풍경은 바뀌어, 졸업식이 눈물 바람의 엄숙한 행사가 아닌지 이미 오래다. 식장에는 유쾌한 음악이 흐르고 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학급과 번호순으로 아이들은 단상으로 올라와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나도 3학년 3반 담임으로서, 일 년 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아이들과 한 명씩 인사를 하고 포옹을 나누었다. 가수 10센치가 “봄이 좋냐??”를 발표할 때, 우리 반 모두가 함께 들으며 깔깔거렸던 날, 어떤 출판사가 수험생을 대상으로 했던 학급 전체 피자 이벤트에 당첨되어 다 같이 피자를 먹었던 날, 여름이 오던 길목에서 꽃단장하고 졸업앨범 촬영을 했던 날, 수능 100일 전 행사에서 간절한 꿈을 담은 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내던 날, 함께 했던 모든 날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찐하게 나를 안아주었고, 나 역시 그들의 힘찬 미래를 기원하며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꽉 안아주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우리 반 실장 빈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퇴직한다는 사실이 비밀이었는데, 빈이가 어디선가 그 소식을 들은 모양이다. 빈이는 이미 눈물 콧물 한바탕 흘린 눈치였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소리에도 눈물이 묻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빈이를 다시 안아 주었다. 그렇게 빈이와는 교무실 문 앞에서 또 한 번 애틋한 이별을 했다.


교사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흔이 되지 않은 나이에 퇴직하는 일은 거의 없다. 퇴사가 꿈이라는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매우 다른 직종이다. 정년퇴직하거나 명예퇴직을 한다면, 학교에서 퇴임식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지만 나처럼 희망퇴직을 하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어떤 행사를 원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날의 H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그 해를 함께한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내 책상을 정리했다. 나만의 최고 멋진 퇴임식을 한 것이다. 교직에 발을 내디디며 나의 모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은 교사로서 마음속에 간직했던 꿈이었다. 꿈꾸었던 대로 모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동시에 교사로서의 삶도 이곳에서 마쳤으니, 이만하면 인생의 한 챕터를 멋지게 마무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졸업식 날과 출국일까지의 며칠 사이, 우리나라에서의 삶의 흔적을 정리했다. 차를 팔고, 살던 집을 처분했다. 사용하던 세간은 뉴질랜드로 일부 보내고, 부모님 댁에 가져다 놓기도 하고 버리기도, 나누어주기도 했다. 전기, 가스, 휴대폰, 인터넷, TV, 보험, 은행 업무를 처리하며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것들이 이리 많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신없는 며칠이 흐르고 드디어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늦은 오후에 이륙하는 비행기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항공사 측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좌석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서류상의 것들, 물리적인 것들은 정리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진짜 정리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인 것을 항공사 측에서 미리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편안한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바라본 것이 하늘인지 우리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의 조그만 창 너머의 세상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내 곁에는 사리씨가(사리씨만이) 함께 할 것이다, 서로에게는 서로가 있지만, 그것 외에 아무 기반도 없는 타국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사리씨는 분명 믿음직한 반려자이다. 그러나 삶의 일정 부분은 언제나 혼자 견디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만큼 철 모르지 않다. 게다가 나 역시 그에게 믿음직한 반려자가 되고 싶다. 그가 먼저 ‘타국에서 살아 보자’ 손잡아 끌었다 해도 그에게 모든 짐을 떠넘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결국에는 함께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할 삶이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 해가 진다. 잠시 붉은빛을 띠더니 금세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 사리씨와 함께 뉴질랜드 여행을 할 때가 떠오른다. 우리는 거울처럼 맑은 퀸스타운 호숫가에도, 모든 것이 잠든 고요한 새벽의 다웃풀 사운드에도, 하얀 요트가 점처럼 찍혀있는 베이 오브 아일랜즈의 눈부신 바다 위에도 있었다. 산다는 것은 때로는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서사와 이야기가 존재함에도 그것들은 모두 잊은 채, 특정 순간들만이 사진처럼 박제되어 기억 속에 자리한다. 앞으로의 뉴질랜드에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틀림없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사진이 되어, 잘 살고 있다 어깨를 토닥여 줄 것이다. 온전히 둘이서 살아보자, 살아내보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내 승무원이 저녁 식사를 가져다준다. 점심 무렵 인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비행기를 타면 눈물이 쏟아질 줄 알았다. 소중한 것들을 우리나라에 두고 온다는 생각에 무척 속상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비즈니스석에 앉아 레드 와인 한 잔에 기내식을 먹고 다리를 쭉 뻗고 누우니 쏟아지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잠이었다. 몰려드는 것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였다.


이렇게 내 인생의 한 챕터는 지는 해와 함께 나의 역사 속으로 저물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비행기는 나를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아침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진 다른 모습의 새 인생의 챕터가 펼쳐질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