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실이라는 기적

코로나 팬데믹에 맞서 모텔 오너로 살아남기

by 리엘리

사리씨와 나는 우리나라에서 매달 17일에 월급이 입금되는 월급쟁이였다. 해마다 추석과 설에는 명절 보너스도 나왔다. 통장에 스치듯 지나가는 월급일지라도 월급 받는 날이 행복했던 월급쟁이가 자영업이라니, 맹세코 나는 내 인생에 자영업의 “ㅈ(지읒)”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영업은커녕 “ㅈ”자로 시작하는 재테크에도 큰 관심이 없는 것이 나란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사리씨가 함께여서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가진 것을 탈탈 털고 심지어 빚도 조금 보태 모텔을 인수했다. 변호사 앞에서 책만큼 두꺼운 계약서에 이쪽저쪽 서명을 하는 데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지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모텔 인수 서명을 마친 계약서는 변호사의 최종 검토 후 상대방 변호사에게 넘길 일만 남겨 두었다. 사기 충만한 사리씨와 나는 모텔을 넘겨받기로 한 날짜보다 며칠 앞서 오클랜드에서 휘티앙가로 이동하기로 했다. 주변 여행도 하고 동네 파악도 할 작정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의 짐을 정리하고, 한인 슈퍼마켓에서 쌀이며, 김치와 같은 식료품도 사두었다.


그때가 2020년 3월 말이다. 정말이지 몰랐다. 2020년에 시작된 전 세계적인 팬데믹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아직도 끝나지 않을 것은 말이다. 이사를 하려고 했던 날의 이틀 전, 2020년 3월 25일, 뉴질랜드 정부는 급하게 전국에 위기 상황 수준을 4단계로 올리고 4주간의 이동 금지령을 내렸다. 자국민을 제외한 모든 입국자의 입국을 막았고 비자 발행을 중단했다. 당연히 우리의 이사도 멈추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계약이 실행되지는 않고 유예되었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계약서가 아직 완전히 상대방 손에 넘어가지 않았고, 아직 돈을 지불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핫워터비치와 캐시드럴 코브라는 유명한 관광지로 먹고사는 휘티앙가 타운에 해외 관광객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은, 휘티앙가의 모텔은 문을 닫으라는 의미가 아닌가? 차라리 계약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닐지 사리씨와 나는 꼼짝없이 아파트에 갇혀 매일 고민했다. 한쪽에 잔뜩 쌓아놓은 채 다시 풀지도 못하는 이삿짐은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이사를 한 후 먹으려고 사두었던 식료품은 봉쇄 기간의 식량이 되어 야금야금 사라졌다.


만약 이대로 여기서 계약을 파기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계약 파기는 계약보다 더 복잡했다. 위약금은 당연하고, 상대방에게 위자료까지 지불해야 할 수도 있었다. 상대방이 소송이라도 건다면, 변호사 비용이 추가된다. 포기해야 하는 금액이 상당했다. 안 그래도 가진 것이 얼마 없는데, 여기서 이만큼을 내어주고 나면, 다음 기회를 위해 다시 그만큼을 모으는 것은 아득해 보였다. 나는 사리씨에게 물었다.


“지금 이 모텔을 인수하지 않아도, 사태가 조금 진정되면 다른 모텔이든, 사업이든 할 생각이지?”

“응, 그렇지.”

“그렇다면, 당분간 적자를 보더라도 모텔을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시작도 안 하고 계약을 파기해서 같은 금액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경험이라도 얻는 편을 택하자.”


사리씨와 나는 용단을 내렸다. 계약을 그대로 진행했고, 제한적 이동이 허락되자 바로 오클랜드를 뒤로한 채 휘티앙가로 이사를 했다. 모텔을 구매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코로만델 산길을 넘어올 때와는 달리, 무거운 한숨과 걱정이 가득한 채 달려오는 코로만델 산길은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봉쇄 직후의 휘티앙가 타운 역시 활기찼던 여름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모형 도시가 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던 시절, 테트리스 맞추기보다 더 잘 맞추어져 빈틈이라고는 없이 견고했던 모텔의 예약표는 텅 비었다. 모텔 전주인과 매니저도 지령을 받고 일한 뒤 우리만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AI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공허한 표현을 들으며 예약 시스템과 물품 주문, 회계와 같은 일을 배웠다. 고용을 유지해서 인건비를 지출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 직원에게는 침대를 정리하고 객실 청소를 하는 순서와 요령을 배웠다. 개점휴업 상태로 시간은 흘러갔다.




6월이 되었다. 드디어 뉴질랜드 국내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겨울이다. 하루가 멀다고 비가 온다.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그날도 그랬다. “퀸스 버쓰데이(Queen’s Birthday, 영연방 국가인 뉴질랜드는 영국 여왕의 생일을 6월 첫 번째 월요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으며, 국가 공휴일이다.)” 연휴였다. 비바람에 코로만델 도로 곳곳이 침수되었다. 크고 작은 산사태로 통행이 어려운 곳도 생겨났다. 손님들이 휘티앙가로 오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동안 집안에서만 갇혀 지냈던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갈망을 막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퍼붓는 비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들이 휘티앙가로 찾아들었다. 한동안 영업을 하지 못했던, 동네 명소 노천 온천장이 연휴를 맞아 개장한 것도 손님을 끌어모으는데 한몫했다. 우리 모텔도 만실이 되었다. 그날이 우리 모텔의 “No Vacancy” 사인에 빨간불이 환하게 켜진 첫 번째 날이다.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뉴질랜드 사람은 뉴질랜드를 돕는다.”는 말이 참말이었다. 비록 아직도, 해외 관광객이 휘티앙가를 찾아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국내 여행을 하는 뉴질랜드 사람들 덕에 그런대로 모텔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뉴질랜드의 총리는 뉴스에 나와, ‘뉴질랜드는 한 팀이다. 서로서로에게 친절히 행동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우리 모텔의 첫 만실은 뉴질랜드라는 팀이 일구어낸 친절함의 기적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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