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어느새 휘티앙가의 모텔 오너
“어떤 것을 드시겠어요?”
“탭 비어 중에 하나 추천해주시겠습니까?”
“라거와 에일 중에서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요?”
“에일이요.”
“음, 그렇다면 이 맥주를 드세요. 일단 시음해보실래요?”
뉴질랜드로의 이민을 결정하기에 전에, 사리씨와 나는 어디서 살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다. 식사하러 레스토랑이나 펍에 들어가면 사리씨는 동네 사람처럼 보이는 서버와 맥주 추천 대화를 빼놓지 않고 했다. 레스토랑에서 나누는 흔한 대화가 사리씨에게는 그 동네의 분위기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나름의 잣대였다.
호주에서는 호주가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앞으로의 삶을 호주에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퀸스타운에서 머문 뒤 우리의 마음은 뉴질랜드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누구라도 반할 만큼 아름답고 깨끗한 타운의 모습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뉴질랜드의 레스토랑에서 느꼈던 기운과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를 뉴질랜드로 이끌었다고 하는 편이 더 옳다. 사리씨가 나눴던 맥주 추천 공통 대화에서, 호주의 레스토랑 직원들은 딱히 추천해주는 맥주 없이, 귀찮다는 듯 ‘그게 그거지. 네가 아는 맥주를 골라 마셔.’라는 식의 응대가 주를 이뤘다. 반면, 뉴질랜드 레스토랑의 직원들은 대부분 밝은 목소리로 그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 위주로 한두 가지를 추려 추천해주고 시음 후 결정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사리씨는 ‘호주 사람들보다는 뉴질랜드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자부심이 있고 이 사람들이 나름 기쁘게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여행 후 몇 해가 지난 뒤, 우리는 정말로 우리나라의 삶을 정리하고 뉴질랜드에서 삶을 시작했다. 유학생의 신분에서 시작해 뉴질랜드의 주민의 된 것이다. 처음 몇 년은 뉴질랜드의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에 머물렀다. 그것은 순전히 학교 때문이었다. 애초에 오클랜드에 정착해서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서울 집값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엄청난 주거비용도 이유라면 이유이지만(2022년 블룸버그 집계 전 세계 집값 거품 순위 1위 국가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뉴질랜드다운 도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 더 큰 이유이다.
사리씨와 나는 오클랜드에 사는 동안에도, 적당한 규모의 우리에게 잘 맞을 것 같은 도시 탐방을 종종 다녔다. 타우랑가, 해밀턴, 파머스턴 노스, 네이피어, 웰링턴, 더니든, 크라이스트 처치, 그렇게 뉴질랜드의 어지간한 규모의 도시들은 거의 다 가봤다. 그 지역 부동산에서 오픈 홈을 한다고 하면, 들어가서 집 구경도 했다. 어디라도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갈 준비는 되어있었다. 일할 수 있는 약국은 작은 타운에도 하나씩은 있으니, 마음에 드는 장소라면 일이 년 정도 살아보고, 또 다른 아름다운 타운으로 이동하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레지던트 비자를 받고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직의 꿈을 이루어 조제실 위주의 근무를 할 수 있는 약국에서 파트타이머로 일을 하며 나름 안정된 생활을 이어갔다. 새 약국은 오클랜드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는 와이헤케 섬에 있었다. 론리 플레닛 선정 세계 베스트 10 여행지에도 뽑혔던 아름다운 섬이다. 약국 사장님은 유쾌한 말투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 조제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출근하는 날 아침이면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넸다. 이직을 한 나와 달리 사리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는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이 괜찮았지만, 사리씨는 그만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사리씨에게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은 영주권을 위해 선택한 징검다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리씨는 몇 달 며칠을 열심히 골똘히 생각하고 검색했다. 어느 날 희붐하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형 인간 사리씨는 그 시간에 깨어있는 일이 흔했다. 내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었다고 생각했는지, 노트북 화면을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눈을 다 뜨지도 못하고 실눈으로 갑작스러운 밝은 빛의 노트북 화면을 슬쩍 봤고 사리씨는 말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봤을 때, 우리가 가진 예산 범위 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모텔이야. 여기 매물들을 한 번 봐봐.”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그냥 던지는 말인가, 진심인가 순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의 말들이 부서져 공중에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모오오오테에에엘, 모오테엘, 모텔.”
사리씨가 나에게 모텔 사업을 인수해서 하자고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그의 결정은 완료가 된 것이다. ‘카페, 레스토랑, 슈퍼마켓, 달러 샵, 약국 지분 인수 이런 것 외에 모텔도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텔을 하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다. 사리씨의 설명을 들으며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나는 승인 또는 반려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딱히 반려할 사유는 없다. 오히려, 승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상황은 일사천리로 흘러갔고, 어느새 사리씨와 나는 매물로 나와 있는 모텔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2020년의 눈부신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코로만델 반도의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평지의 타운을 만났다. 타운을 휘감아 돌고 있는 수로 주변에는 근사한 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집과 수로가 맞닿는 곳에는 줄지어 하얀 요트가 정박해 있었다. 그림같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퀸스타운이 연상될 만큼 아름다운 타운이었다. 타운의 메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푸른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모텔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타운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이미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반짝이는 바다와 깨끗하고 활기찬 타운을 둘러볼 때는 마음이 움직인 정도가 아니라, 이미 반해버린 뒤였다. 파란 페인트칠이 인상적인 모텔을 구석구석 보고, 2층 테라스에 올라 바다를 보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휘티앙가의 알버트 넘버 6 모텔이 우리 집이 되었고, 사리씨와 나는 모텔 오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