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 우리의 구세주 소중한 직원님
“우리 모텔에 켈리라고, 정규직 직원이 한 명 있어요. 켈리를 해고하지 마시고 계속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해 주시길 부탁해요.”
모텔 전주인 마틴은 모텔을 넘기며, 우리에게 말했다. 사리씨와 나는 앞으로 손님이 얼마나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부터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 중이었다. 당연히, 마틴의 이런 부탁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당장은 정부에서 인건비 지원을 해준다는 발표가 있어 일단 고용을 유지한 채 지켜보기로 했다.
눈가에 새카맣고 두껍게 그린 아이라인 탓에 켈리의 첫인상은 ‘센 언니’ 느낌이었다. 서양인의 이목구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피부색이 어둡고 통통한 체형이라 첫인상으로는 마오리인지 퍼시피카(Pacifica, 남태평양 섬나라 출신인들)인지 유럽계인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 켈리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묻히고 왔을지도 모르는 오클랜드에서 온 코리안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새 동양인 사장을 내심 경계하는 눈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 역시도, 켈리를 계속 고용해야 할지 불확실했기에 선뜻 우리 직원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 같다.
손님이 하나도 없을 때도 켈리는 출근했다. 켈리에게 침대 정리와 객실 청소와 같은 기본적인 일을 배웠다. 어리벙벙한 초보 사장을 앞에 두고, 일이 능숙한 켈리는 바쁠 때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일을 알아서 했다. 열여섯 개의 객실을 차례로 돌아가며, 커튼을 세탁하고 토스터며 전기 주전자에 숨어있는 얼룩을 닦았다. 누렇게 변한 수건을 분리해 세제와 락스를 이용해 다시 하얀 수건으로 세탁했다. 재고를 정리하고 교체가 필요한 물건, 새로 사야 할 물건의 목록을 정리해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켈리는 우리 모텔의 주인과 매니저를 바꾸어가며 벌써 10년 넘게 우리 모텔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보다 더 주인 같은 직원이었다. 동네 사정이며 모텔 이모저모를 모르는 것 없이 다 꿰고 있는 터줏대감이었던 것이다. 손이 빨라 일도 쓱싹쓱싹 잘했고, 쉬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찾아서 했다. 메인 업무는 객실 청소이지만 이것저것 다 하는 만능 직원이었다. 말씨도 상냥하고 친절해서 손님들은 켈리와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가 없을 때는 예약 업무와 접객 업무도 한다.
자연스럽게 사리씨와 나는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켈리에게 의지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켈리에게 웃으며 말한다.
“켈리,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지? 너는 정말 우리의 구세주(lifesaver)야.”
켈리 덕분에 우리는, 몇 시간 정도 모텔을 켈리에게 맡겨놓고 외출을 한다. 켈리 덕분에 우리는 손님이 뜸한 평일을 틈타 며칠 정도 모텔을 켈리에게 맡겨 놓고 휴가를 다녀오기도 한다. 이직과 사직, 결근이 흔하게 일어나는 ‘모텔 클리너’라는 직위에, 이런 믿음직한 직원은 정말 천군만마와 다름이 없다.
켈리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나 켈리가 휴가를 갈 때면, 켈리 몫은 내 몫이 된다. 나는 켈리에게 배운 대로 일한다. 손님들이 체크아웃을 하면, 바구니에 청소용품을 챙겨 객실로 출동이다. 쓰레기봉투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것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커튼을 걷고 출입문과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베갯잇과 침대 시트를 걷고 새하얀 새 시트와 베갯잇으로 교체한 뒤, 샤워부스와 화장실 청소를 한다. 사용한 수건과 그릇을 깨끗한 것들로 바꾸어 놓고, 선반이며 테이블을 닦는다. 맨 마지막에 청소기를 돌리고, 빠진 물건은 없는지, 제자리에 잘 놓여 있는지 방안을 확인한다. 똑같은 일을 다음 객실에서도 한다.
큰 기술은 필요 없는 단순 반복 업무이지만 다음 체크인 시간인 오후 2시 전에 모든 객실 준비를 마쳐야 해서 오전 내내 정신없이 바쁘다. 초보 시절에는 침대 시트를 새로 씌우는데도 침대 이쪽저쪽을 돌고 또 돌고, 허리를 굽혔다 폈다, 무릎으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십 번 반복하느라 힘이 곱절로 들었다. 쓰레기봉투를 빼놓고 와서 준비실에 왔다 갔다, 다시 보니 티스푼의 개수가 맞지 않아서 또 왔다 갔다, 화장지 여분이 없어서 또다시 왔다 갔다 하느라 일의 진척이 느렸다. 객실 하나를 청소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빨랫감은 무거웠고 개수대에 쌓인 그릇을 다 닦고 나면, 밤에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요령이 없으니 몸이 고단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일에 속도가 붙었다. 힘을 덜 들이고도 설거지며 빨래, 다림질을 해치운다. 그렇지만 역시 모든 일을 매일 혼자 해야 했다면 지쳐서 못 할 일이다. 성실하게 출근해서 주인처럼 일해주는 켈리 덕분에 지치지 않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텔은 뉴질랜드 북섬에서도 대부분 산악 지형인 코로만델 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인구 6천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타운인 휘티앙가(whitianga)에 있다. 대부분이 산지이고 계곡이 깊어 휘티로 오는 길은 그 옛날 강원도 대관령 고갯길 넘어오는 것 마냥 꼬불꼬불 끝이 없다. 그러나 휘티에 도착하는 순간 드넓은 남태평양을 마주한다. 눈만 돌리면 사방에 아름다운 푸른 바다가 보인다. 게다가 모래를 파면 뜨거운 물이 퐁퐁 솟아나는 핫 워터 비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우리나라 가수 마마무의 뮤직비디오 촬영지이자, ‘나니아 연대기’ 영화에도 등장했던 신비로운 느낌의 지형인 캐시드럴 코브(cathedral cove)도 주변에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깨끗한 해변과 하이킹 코스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덕분에 뉴질랜드 사람들은 코로만델 이쪽저쪽을 ‘히든 젬(hidden gem, 숨겨진 보석)’이라고 부르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나는 우리 모텔에서 머물며 코로만델의 ‘히든 젬’을 찾아 휴가를 즐기는 손님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의 느긋한 휴가는, 우리 모텔의 숨은 보석 켈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켈리가 항상 당신들의 침대를 정리해주고, 당신들이 머물 방을 깨끗이 해준다고 말이다. 당신들의 히든 젬이 코로만델에 있다면, 우리 모텔의 숨은 보석은 켈리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