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부르는 것은, 안 됩니다!!
“고뤠-? 그럼, 사람 불러야 돼,”
개그 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코너에서 코미디언 김준현이 이렇게 말하자 방청석 이쪽저쪽에서 웃음이 빵빵 터진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리씨와 나도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 불러야 돼.’라는 말이 심각한 말이 아니라, 웃길 수 있는 말로 사용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무척 새삼스럽다.
모텔 사장인 지금, ‘사람 불러야 돼.’ 이 말은 나오던 웃음도 쏙 들어가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말이다. 뉴질랜드 뿐 아니라 해외 각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은, 모텔 사장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지간한 일은 직접 해야 한다. ‘사람을 불러야 하는 일’은 진짜 심각한 일이다. 어떤 일이든 사람을 한 번 부르면 인건비와 부대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비용을 떠나 당장 급하게 사람(전문가)이 필요한 일조차도 예약과 기다림의 시간은 기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이 안 돼 사람을 부르려고 연락하면, 사흘 뒤에나 기술자를 보내준단다. 그것도 수리가 아니라 문제 확인을 위해서 말이다. 모텔 예약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터넷 작동이 정말 중요한데 사흘 뒤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다. 예약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것도 큰 일지만, 기다림의 사흘 동안 인터넷 연결이 필요한 손님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당시, 사리씨는 인터넷 업체와 몇 시간의 지난한 공방 끝에 추가 비용 없이 핸드폰을 핫스폿으로 사용해, 인터넷을 이용하는 임시방편을 겨우 얻어냈다.
때로는 고장 난 부분을 고치기 위해, 어떤 사람을 불러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배관공이라고 다 같은 배관공이 아니었다. 수도만 봐주는 배관공, 가스보일러를 함께 봐주는 배관공이 따로 있다. 가스보일러가 고장 나서 사람을 불러보기 전에는 배관공이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는 것을 몰랐다. 건조기가 고장이 나 전기 기술자를 부르니 건조기를 보는 전기 기술자는 따로 있다고 한다. 건조기 기술자를 찾아 기껏 전화하니, 해당 브랜드의 건조기를 취급하는 기술자는 또 따로 있다고 한다. 수소문을 해 해당 브랜드의 건조기 기술자를 불렀더니, 부품을 하나 교체해보자고 한다. 교체를 해서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써보겠단다. 더군다나 부품이 오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릴 텐데, 시도해 볼 텐가 하는 식이다.
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과정별로 이 사람, 저 사람 다양한 여러 사람이 요구될 때도 있다.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지붕 청소하는 사람과 벽을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잔디를 깎는 사람과 나무를 잘라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 비유하자면, 밥만 하는 사람과 국만 끓이는 사람이 별개여서 밥과 국을 함께 먹으려면 각각 다른 곳에 주문하고 비용도 각각 지불해야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지난여름 최성수기에, 1층의 객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고, 그 방의 손님이 아침 일찍부터 리셉션에 찾아왔다. 만실이라 다른 방으로 옮겨 줄 수도 없었다. 일단 손님에게 사과하고 물어보니, 손님은 환불보다는 다른 모텔로 옮겨주기를 원했다. 최성수기의 휘티앙가 지역의 모텔에는 남아있는 객실이 거의 없다. 주변의 모텔에 일일이 전화해서 혹시 빈 객실이 있는지, 갑작스러운 취소는 없는지 전부 알아보았다. 다행히 빈 객실이 있는 모텔이 한 군데 있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손님을 그쪽 모텔로 옮겨 드렸다. 하룻밤 숙박료가 우리 모텔의 가격보다 3배 비쌌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는, 물이 새는 객실의 천장을 뜯어내기 위해 빌더(건축업자)를 불렀다. 빌더가 와서 천장을 뜯었다. 다음은 배관공의 차례다. 2층 객실의 샤워실에서 누수가 일어났다고 알려준다. 문제가 되는 샤워실의 배관을 점검하고 부품을 교체하고 누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다시 빌더의 차례다. 휴가철이라 동네의 빌더들이 전부 휴가 중이다. 며칠 혹은 몇 주 걸리는 수리를 해준다는 빌더가 없다. 우리 모텔 뒷집에, 지붕만 전문으로 하는 건축업자가 이웃으로 살고 있어 혹시나 문의했다. 휘티앙가로 휴가를 와 있던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어렵게, 객실의 천장을 고쳤다. 이 모든 과정을 처리하는데, 3주 정도가 걸렸다. 상업 시설인 것을 감안해서, 기술자들이 매우 속도를 내어 해결을 해준 것이 3주이다. 수리하는 동안 그 방은 여름 최성수기 영업을 3주 동안 못했다. 수리 비용과 영업 손실금이 상당했다. 그나마 그 방을 제외한 다른 방들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3주 만에 끝난 것이 어디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나라에서 사리씨는 집에 형광등을 교체하는 정도의 기술은 있었지만, 공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요한 순간에, 비용이나 소요 시간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사람을 불렀다(기술자를 모셨다). 그러나 모텔 사장이 되고 나서는 직업을 ‘모텔 운영’이라고 쓰고 ‘만능맨’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공구함에 각종 기능이 탑재된 공구가 늘어나고, 더불어 수리의 기술도 는다. 실리콘도 잘 바르고, 나사를 박아 조이는 일 정도는 눈감고도 할 것 같다. 벗겨진 페인트도 칠하고, 부서진 문도 고친다. 유튜브의 DIY 프로그램 구독자이기도 하다. 잔디도 깎고, 제초제도 뿌리고 정원도 가꾼다. 인터넷이 잘 안 될 때 사람을 부르기 전에 시도해보는 비상 대책도 습득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않기 위해, 매일 모텔 이쪽저쪽을 점검하고 살핀다. 오늘도 어지간하면 ‘사람을 부르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