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지 않아요. 대실도 없고요.
“오늘 한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
“왜?”
“지난 20일 밤에 우리 모텔에서 카드 결제가 이루어졌는데, 카드 주인은 우리 모텔에 간 적이 없다고, 거짓 결제라고 카드 회사에 결제 취소 요청을 했다는 거야.”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다. 손님은 자정이 지나, 새벽 한 시쯤 왔다. ‘vacancy’라는 모텔 입구의 사인을 보고, 간판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한밤중의 곤한 잠을 깨우는 전화가 달갑지는 않지만, 사리씨가 전화를 받고 리셉션으로 내려갔다. 손님은 친구들로 보이는 성인 남자 둘에 여자 하나였다. 겉으로 볼 때 이상한 점은 없었다. 단, 결제할 신용카드를 두고 왔다고 카드 없이 신용카드 번호로만 결제해도 되는지를 물었다. 수수료는 더 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손님 중 한 사람의 핸드폰으로 카드 주인이라는 한 여자와 통화를 하게 해 주었다.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카드 번호를 불러준다. 결제는 이상 없이 진행되었고, 그들에게 방을 내주었다. 한밤중이었고 불과 몇 시간 후면 떠날 사람들이라, 그들의 인적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다.
아침이 되었다. 그들은 이미 떠난 뒤다. 밤중에 와서 방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불이며 물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은 것을 보면 조용히 잠만 잔 흔적은 아니다. 청소하고 정리하다 보니 텔레비전에 USB가 하나 남겨져 있다. 사리씨가 컴퓨터에 연결해 내용을 확인했다. 수많은 온갖 야동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성인이었고, 뉴질랜드는 성 노동자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좀 특별한 손님이었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 손님들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쯤,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손님이 알려주었던 연락처로 전화를 몇 번 해보았으나 응답이 없다. 카드 실물로 이루어진 결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제가 거짓된 결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하룻밤 숙박료는 날아갔다. 모텔을 시작하고 겪은 가장 범죄에 근접한 일이다.
무언가 의심스러운 손님들은 주로 예약 없이 아주 늦은 시간이나 한밤중에 온다. 숙박료는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쪽저쪽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꺼내 겨우 금액을 맞춘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이른 시간에 사라져 만날 수 없다. 다만, 떠난 뒤 흔적이 남아있다. 이를 테면, 금연을 해야 하는 방 안에서 흡연한 흔적, 애완동물 동반 금지인 방에서 동물의 냄새나 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따위이다.
지금은, 미리 예약해서 사전에 약속된 상황이 아닌 이상, 한밤중의 전화는 어지간하면 받지 않는다. 밤중에 와서 신용카드 번호로만 결제를 한다고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모텔을 인수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이런 손님, 저런 손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초기에 한 명의 손님이라도 받아야 하는 다급한 시절에 겪었던 일들이다. 위에서 말한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모텔의 손님들은 대부분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는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미국의 범죄영화나 호러 영화를 보면 외딴곳에 위치한 모텔이 배경인 경우가 많다. 그 유명한 고전 영화 ‘사이코’의 배경도 모텔이다. 그래서 미국의 모텔은 인적 드문 곳에 있는 위험하고 으스스한 귀곡 산장 이미지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어 마을과 마을 사이에 거리가 먼 나라에서는 가능한 스토리일 것이다. 듣기로는 유튜브 채널 중에서 미국의 인적 드문 곳에 버려진 모텔을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유튜버도 있다고 한다. 이미지와 실제가 영 틀린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나라에서 ‘모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역시 좋지는 않다. ‘러브’를 앞에 붙여 러브모텔이라고 부른다거나, 대학생들은 MT를 간다고 부모님께 둘러대고 모텔을 드나든다는 말은 늘 있었다. 대학가나 대중교통으로는 잘 닿지 않는 한적한 의외의 장소에 모텔이 많은 것을 보면 근거가 없는 낭설은 아닌 듯하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모텔이 숙박업의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약간 어두컴컴하고 은밀한 또는 떳떳하지 않은 어른들의 장소라는 이미지다. 누구든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가족이나 지인들이 목격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보면 그렇다. 설령 모텔에서의 숙박이 아주 정상적인 숙박이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왜 모텔에서 나왔는지 설명하고 상대방을 납득시켜야만 하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이 증거이다.
뉴질랜드의 모텔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모텔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자동차(Motor)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주차하면서, 동시에 호텔보다 저렴하게 이용하는 모토 호텔(Motor Hotel)의 줄임말, 모텔(Motel)이다. 뉴질랜드는 미국처럼 거대한 나라가 아니라 아기자기 작은 타운이 곳곳에 있는 나라다. 당연히 모텔이 범죄자들이 숨어들 만한 환경이 될 수 없다. 뉴질랜드 모텔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옆방에 묵는 손님이 불안하다면, 버짓을 조금만 올리면 된다. 뉴질랜드의 작은 타운에는 고급 호텔은 없을 테니 조금만 비싼 모텔을 찾으면 해결된다. 뉴질랜드의 모텔은 우리나라처럼 어두운 조명 일색에 특별한 취향을 가진 손님을 위한 특별한 침대가 있는 장소가 아니다. 연인, 친구,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원하는 만큼 머물다 가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평범한 숙소이다. 단순한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 업무상 출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모텔에서 묵는다. 대실은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우리 모텔이 쓸모를 다하여, 부디 사리씨와 나의 좋은 일터가 되고 이곳에서 손님들이 마음 놓고 편안하게 하룻밤 묵어가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